“성공하기 어려운, 국가의 완벽 통제”[김영민의 본다는 것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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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7>완벽한 수박밭을 보다

바둑판처럼 정확하게 줄을 맞춘 수박들은 완벽한 수박밭을 만들어 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누군가가 수박 한 통을 훔쳐가자 흐트러
졌다. 그림책공작소 제공
바둑판처럼 정확하게 줄을 맞춘 수박들은 완벽한 수박밭을 만들어 줄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누군가가 수박 한 통을 훔쳐가자 흐트러 졌다. 그림책공작소 제공
그림책 ‘앙통의 완벽한 수박밭’을 펼치면 바둑판처럼 질서정연한 수박밭 한가운데 농사꾼 앙통이 우두커니 서 있다. 그의 주변에는 잘 익어 탐스러운 수박이 가득하건만 앙통은 세상을 다 잃은 듯 좌절한 모습이다. 누군가가 수박 한 통을 훔쳐갔기 때문이다. 단순히 수박 한 통이 사라졌다는 문제가 아니다. 그 일만 아니었으면 완벽했을 수박밭이 완벽해지지 못한 것이다. 앙통은 수박 한 통을 잃은 것이 아니라 완벽한 수박밭을 잃은 것이다.

잘 익어 탐스러운 수박이 들판에 가득하건만 앙통의 눈길은 수박 한 통이 사라진 그 빈자리에만 머문다. 뭔가 공들여 키우던 것을 상실해본 적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 허탈감을 이해할 것이다. 어떤 경제학자는 앙통이 매몰 비용(sunk cost), 즉 이미 지출되었으나 회수할 수 없는 비용을 아쉬워하는 중이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그것만으로는 앙통의 좌절감을 다 설명하지 못한다. 앙통은 그토록 원하던 ‘완벽함’을 잃어버린 것이다.

아무래도 앙통은 사라진 그 수박에 대한 집착을 거둘 수 없다. 이루지 못한 사랑은 더 아쉬운 법. 잃어버린 것은 더 소중한 법. 잃어버린 수박은 앙통의 마음속에서 점점 커져만 간다. 커지고 커지다가 그만 그림책 밖으로 터져나갈 것만 같다. 옛 그림에서는 원근법을 무시해버리고 중요하다고 판단한 대상을 크게 그리곤 했다. 이를테면 왕은 신하나 백성보다 크게 그려지곤 했다. 작가 마리옹 뒤발은 마침내 그림책 한 페이지 가득히 그 잃어버린 수박을 그려 넣는다.

이제 이 수박은 더는 현실의 그 수박이 아니다. 앙통의 상상 속 수박이다. 그 수박은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탐스럽고 맛있는 수박으로 변한다. 잃어버렸기에 더 탐스럽고, 더 맛있고, 더 아삭아삭했을 거라고 여겨지는 것이다. 앙통은 마침내 꿈을 꾼다. 꿈속에 그 수박을 훔쳐 간 사람을 만난다. 그 사람은 다름 아닌 앙통 자신이었다. 꿈속에서 앙통은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그 수박을 게걸스럽게 먹고 있다.

꿈에서 깬 앙통은 마침내 수박밭을 밤새 지키겠다고 결심한다. 불철주야 국토를 지키는 정부처럼 앙통은 밤을 새워 수박밭을 지키려고 한다. 범죄를 예방하는 경찰처럼 앙통은 잠을 자지 않고 수박밭의 질서를 수호하려고 한다. 그러나 관리자 앙통은 지쳐간다. 아무리 수박밭을 질서정연하게 지키고 싶어도, 그 넓은 수박밭을 다 지킬 여력이 없는 앙통. 피곤한 앙통이 마침내 과로한 총독처럼 잠들자 어디선가 길고양이들이 나타난다.

고양이들은 소유물을 지키기 위해 밤을 새우는 것보다 훨씬 더 재미있게 밤을 보내는 법을 알고 있다. 고양이들은 질서정연하게 줄을 잇고 있는 앙통의 수박들, 농기구들, 씨앗들, 그리고 심지어 앙통의 집착마저도 다 뒤죽박죽으로 만들어 버린다. 이제 그림책 속에서 수박은 땅에 박혀 있지 않다. 볼링공처럼 지상을 질주할 뿐 아니라 심지어 하늘로 날아다니기까지 한다. 앙통이 국가처럼 수박밭에 질서를 부과했다면 고양이들은 예술가들처럼 그 질서를 가지고 논다.

고양이들이 수박밭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자 놀랍게도 수박들이 싱싱하게 잘 자랐다. 그림책공작소 제공
고양이들이 수박밭을 뒤죽박죽으로 만들자 놀랍게도 수박들이 싱싱하게 잘 자랐다. 그림책공작소 제공
다음 날 아침, 깨어난 앙통은 난장판이 된 수박밭을 발견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수박들이 그 어느 때보다도 싱싱해 보이는 것이 아닌가. 더 놀라운 것은 그 잃어버린 수박의 자리가 어디였는지조차 이제 알 수 없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제 위치’라는 말을 할 수 없게끔 수박밭이 자유로워져 버렸기 때문이다. 사라진 수박의 빈자리가 그토록 크게 느껴졌던 것은 다름 아니라 수박이 질서정연하게 배치되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그 상실감은 어쩌면 사물의 ‘배치’ 문제였는지도 모른다.

정치인류학자 제임스 스콧에 따르면 국가는 질서를 욕망한다. 역사상 국가 대부분은 통치를 잘해내기 위해 통제에 적합한 공간의 배치를 만들어 왔다. 스콧의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당나라 수도 장안은 바둑판처럼 격자형 구조로 만들어졌고 일본의 옛 수도 교토도 바로 그 장안을 본받아 도시계획을 했다. 아무리 의도가 그럴듯해도 그런 국가의 시도는 완전히 성공하기는 어렵다.

17세기 일본의 옛 수도 교토는 당나라 수도 장안을 본뜬 격자형 구조로 도시를 만들었다. 하지만 통제를 앞세우려는 국가의 시도는 성공하기 어렵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17세기 일본의 옛 수도 교토는 당나라 수도 장안을 본뜬 격자형 구조로 도시를 만들었다. 하지만 통제를 앞세우려는 국가의 시도는 성공하기 어렵다. 사진 출처 위키피디아
교토의 거리에도 길고양이들이 끊임없이 배회하듯이 아무리 국가가 일탈 없는 질서를 꿈꾸어도 결국 그 안에서는 자유로운 예술가들이 자라난다. 집사의 관리 욕망에 무심한 고양이들처럼 예술가들은 창의적인 일탈을 통해 효율적이지만 답답한 구조에 구멍을 낸다. 그렇다면 국가와 예술은 끝내 적대적일 수밖에 없는 것일까. 꼭 그렇지는 않다. ‘앙통의 완벽한 수박밭’에서 결국 앙통의 근심을 구제하는 것은 고양이다.

예술은 ‘완벽’이라는 말을 재정의함으로써 국가를 구제한다. ‘앙통의 완벽한 수박밭’은 국가의 열망, 관리 욕망, 관리로부터 벗어나려는 고양이의 본능, 탈주하려는 예술적 충동을 차곡차곡 그려 넣은 뒤 마침내 ‘완벽’이라는 말을 재정의한다. ‘앙통의 완벽한 수박밭’의 마지막 페이지. 난장판이 된 수박밭을 보며 앙통은 말한다. “수박밭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완벽하다.”

김영민 서울대 정치외교학부 교수
#수박 한 통#완벽한 수박밭#앙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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