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인찬]6·25 전사자 추모의 벽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5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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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는 6·25전쟁에서 전사한 국군과 유엔군의 이름이 새겨진 명비(名碑)가 있다. 6·25전쟁의 전사자는 국군 13만7899명, 유엔군 3만7902명. 명비에 이름을 새겨 수많은 희생을 후대에서도 기억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이 명비에는 1994년 국군의 이름이 먼저 새겨지고 6년 뒤인 2000년에야 유엔군의 이름이 더해졌다. 정부가 아니라 한 방산업체가 제작해서 기증한 것이었다.

▷미국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벌어졌다. 워싱턴의 한국전쟁 참전 기념공원에는 여태껏 미군 전사자들의 이름을 새긴 명비가 없다. 앞서 6·25전쟁 행사 때 생존한 전우들이 전사자들의 이름을 호명하며, 명비의 건설을 촉구한 적도 있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이런 노력이 뒤늦게 결실을 본다. 6·25전쟁에서 전사한 미군 3만6574명, 한국군 카투사 7000여 명의 이름이 새겨진 ‘추모의 벽(Wall of Remembrance)’ 착공식이 21일 열린다. 방미 중인 문재인 대통령도 참석한다.

▷내달 6·25전쟁은 71주년을 맞는다. 하지만 참전용사에 대한 예우가 여전히 부족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이번 추모의 벽 건설도 생존한 용사들이 앞장서서 시작했다. 취지에 공감한 한미의 민간단체들이 십시일반 기부금을 모았지만 약 250억 원인 건설비 마련에 힘이 부쳤다. 이런 상황이 되고 나서야 한국 정부는 뒤늦게 지원에 나섰다.

▷추모의 벽은 내년까지 한국전쟁 참전 기념공원 내 ‘추모의 연못’ 주변에 설치된다. 화강암 판에 전사자들의 이름이 알파벳 순서로 새겨진다. 가장 첫 줄에는 존 에런 주니어(John Aaron Jr.) 육군 이등병이 자리 잡는다. 그는 1950년 7월 27일 하동 전투에서 사망한 300여 명의 미군 중 한 명으로 당시 22세였다. 미 8군사령관으로 낙동강 방어선을 지켰던 월턴 워커 장군의 이름도 새겨질 것이다. 그는 당시 “지키지 못하면 죽음뿐이다(Stand or die)”라고 소리치며 부하들을 독려했다.

▷6·25전쟁에 참여한 미군은 178만 명이 넘는다. 그런데 이제 생존자는 50만 명 남짓이고, 하루 600명 정도가 세상을 뜨고 있다고 한다. 참전용사들에게 예우를 갖추고, 감사를 표할 수 있는 시간마저 줄어들고 있는 것이다. 지금이라도 추모의 벽이 마련되는 것은 다행이다. 미국의 보훈단체들은 ‘더 이상 잊혀지지 않는 전쟁(No Longer the Forgotten War)’이라며 6·25전쟁 되새기기 운동에 나서고 있다. 우리도 국가의 부름에 목숨을 내놓고, 명비에 한 줄 이름을 남기고 떠난 수많은 청춘들을 잊어서는 안 될 일이다.

황인찬 논설위원 hic@donga.com


#6·25 전사자#추모의벽#전쟁기념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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