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은 공평하다[이정향의 오후 3시]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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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 아마데우스

이정향 영화감독
이정향 영화감독
볼프강 아마데우스 모차르트와 그를 죽음으로 몰고 간 안토니오 살리에리, 두 음악가의 이야기다. 18세기 말, 살리에리는 유럽 합스부르크 제국의 궁정악장으로 부와 권세를 다 갖췄지만 여섯 살 아래인 20대의 모차르트에게 강렬한 질투를 느낀다. 인품도 사회성도 떨어지는 모차르트. 하지만 그의 작곡 실력은 신이 특별히 그를 사랑하신다는 증표처럼 살리에리를 좌절시킨다. 여태껏 신의 눈 밖에 나는 일 없이 오직 신을 찬양하는 도구로 쓰이고자 자신을 담금질해 온 살리에리이기에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고, 신에 대한 복수로 모차르트를 파괴한다.

영화와는 달리 실제로는 모차르트가 살리에리를 부러워했다고 한다. 인품과 재능에 심지어 인복마저 따랐던 살리에리는 일찍 성공했고 말년까지 그 권세를 누렸지만 모차르트는 씀씀이가 커서 항상 돈에 쪼들렸다. 살리에리는 학생들을 거의 무보수로 가르쳤으며, 베토벤과 슈베르트를 대작곡가로 만든, 존경받는 스승이었다. 모차르트의 둘째 아들도 음악가로 키워냈다. 영화 속, 모차르트에게 아버지의 혼령처럼 등장해서 죽음으로 몰아간 실제 인물은 살리에리가 아니라 어느 돈 많은 귀족이었다. 영화는 현대인들이 모르던 살리에리라는 음악가를 세상에 드러냄과 동시에 천재 모차르트를 질투 때문에 죽인 범재(凡才) 살인자로 둔갑시켰다. 나도 대학생 때 이 영화를 보고 ‘살리에리 아저씨 참 한심하네’라고 욕했으니까. 그에게 미안하다.

나는 선생님들께 질투가 너무 없어서 문제라는 말을 많이 듣고 자랐다. 친구들이 나보다 예쁘고 부자인 건 내 잘못이 아니니 열등감을 가질 필요가 없지 않나, 그들이 공부를 잘하는 건 노력한 대가니까 애먼 질투를 하기보다 게으른 나를 탓해야지, 하면서 맘 편히 살다가 열두 살 때 거울을 보며 대각성을 했다. ‘이 얼굴로 살아남으려면 유머 감각을 키워야겠다.’ 그 뒤로 엄청난 노력 끝에 친구들 사이에서 재미있고, 기발하고, 웃긴 존재가 되었다. 로맨틱 코미디로 데뷔를 한 후에야 20년 넘게 기울여온 노력을 내려놓았다. 내가 웃긴다는 걸 세상에 알렸으니 이젠 됐다 싶었다.

모차르트의 지인들은 그처럼 열심히 연습하고 노력하는 사람을 못 봤다고 한다. 매일 건반을 두드리고 악보를 그리느라 손가락이 휘었다는 얘기도 있다. 모차르트가 말했다. 천재라서 쉽게 곡을 만든다고 하지만 나만큼 작곡 공부를 많이 한 사람은 없을 거라고. 살리에리도 그의 재능이 부러웠겠지만 살리에리는 자신이 잘할 수 있는 일을 평생 꾸준히 해냈다. 신이 둘에게 내려준 재능은 종류가 달랐을 뿐이다. 부러운 마음을 자기 발전의 기회로 삼는다면 보약이지만, 질투하고 시기하면 내가 먹을 독약이 된다.

이정향 영화감독


#신#공평#아마데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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