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항공 독점시대[오늘과 내일/김광현]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1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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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 사라져 소비자 혜택 줄어들 우려 있어
부실 악화로 나랏돈 붓는 ‘세금의 저주’ 없어야

김광현 논설위원
김광현 논설위원
내가 하면 가장 피곤하고, 남이 하면 가장 좋은 것이 바로 경쟁이다. 독점은 그 반대다.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 두 항공사의 기내식 서비스는 세계 최고 수준으로 정평이 나 있다. 서방 항공사들의 닭고기나 생선튀김 같은 푸석한 메뉴만 접하다 비빔밥, 불고기, 영양쌈밥, 라면 같은 메뉴를 보면 한국인 승객은 물론이고 외국인들도 감탄한다. 두 항공사는 겹치는 노선을 운영하면서 치열한 고객 유치 경쟁을 벌일 수밖에 없었는데 특히 후발 주자였던 아시아나항공이 기내식 개발에 심혈을 기울였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정부가 16일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의 인수합병을 승인했다. 이로써 국내 항공산업은 1988년 이후 32년 만에 대한항공의 독점체제로 다시 돌아가게 됐다. 이번 합병은 여러 각도에서 볼 수 있다. 예컨대 국가산업 차원에서는 항공산업의 경쟁력이 중요했을 것이고, 주채권은행인 KDB산업은행은 채권 회수에 무게를 두었을 것이다.

아무도 대변해주지 않지만 소비자의 입장도 있다. 주무 당국인 국토교통부나 대한항공은 그럴 리 없다고 부인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독점 대한항공이 여객이나 화물 항공료를 올리고, 기내식 메뉴가 줄고, 각종 서비스 질이 떨어질 가능성이 충분히 있다. 그게 이윤의 논리고 독점의 심리다. 독점을 통제할 수 있는 것은 정부밖에 없는데 주요 주주로 대한항공과 한 비행기를 탄 정부가 그 역할을 제대로 할 수 있을까.

고용 문제도 주요 쟁점사항이다. 정부와 산업은행은 합병의 전제로 인력 구조조정은 없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하지만 중첩되는 사업 정리, 중복 인력 조정이 없다면 왜 항공사끼리 합병을 하며 어디서 시너지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냐는 의문이 들 수 있다.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과 경영권 분쟁을 벌이고 있는 KCGI-반도건설-조현아 3자 주주연합의 반발도 변수로 남아 있다.

아시아나항공의 설립일은 5공 임기의 마지막 날 일주일 전인 1988년 2월 17일이다. 당시 정부로서는 88올림픽 이후 급증할 여객 수요를 감당하고 경쟁체제를 통해 항공산업을 키울 필요가 있었다. 여기에다 호남 민심을 고려해 광주고속을 운영하던 금호그룹을 제2 민항 사업자로 선정했다는 게 통설이다. 이런 이유로 이번에도 아시아나항공 인수기업으로 대기업 외에 중견그룹 가운데는 호남에 기반을 두고 있으면서 자금력이 있는 기업들의 이름이 많이 오르내렸다.

날개가 있다는 점 빼고는 닭고기와 비행기가 공통점이 없는데도 당사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하림그룹이 인수기업으로 오르내린 것도 전북 지역의 대표적 기업이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이번 인수합병 과정에서 사업·경제적 측면 외에 정치적인, 지역적인 요인들로 인한 잡음이 별로 없었던 점은 다행스러운 대목이라 하겠다.

무엇보다 일반 국민인 납세자 입장이 가장 중요하다. 재무적으로 부실한 두 회사가 합쳤다가 사정이 악화되면 산은의 추가 지원 말이 나올 수 있다. 작년 말 아시아나항공의 새 주인이 될 뻔했던 현대산업개발이 소송을 각오하고 인수 계약을 취소한 것도 갑작스러운 코로나19로 인해 ‘승자의 저주’에 빠질 것을 두려워했기 때문이다. 두 항공사가 1년 내 갚아야할 단기 부채만 약 10조 원이다. 부실한 두 기업의 합병에 따른 동반 추락으로 밑 빠진 독에 나랏돈을 붓는 ‘세금의 저주’가 발생하는 일이 없도록 각별히 주의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독점 대한항공의 뼈를 깎는 자구 노력이 먼저 있어야 한다.

 
김광현 논설위원 kkh@donga.com
#대한항공 아시아나 인수 추진#독점 대한항공#항공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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