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이유[내가 만난 名문장]

  • 동아일보
  • 입력 2020년 6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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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은 시인
오은 시인
‘그러나 경험이 독서보다 반드시 삶에 더 유효하다고 단언할 수 없다는 데에 독서의 신비가 있다.’

―김인환 ‘타인의 자유’ 중

한 사람이 묻는다. “네가 직접 해봤어?” 맞은편에 있는 사람이 당황한다. 이 물음은 경험의 유무를 따져 경험하지 않은 사람의 입을 틀어막는 말이다. 그런데 해보지 않았다고 해서 그 일에 대해 함구해야만 할까. 다른 사람의 슬픔에 대해서, 지구 반대편에서 벌어지는 일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말아야 할까.

해봐야 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부딪치는 사람이다. 그는 몸의 감각을 믿는다. 경험에서 얻은 지혜가 삶의 동력이 된다. 그러나 개인이 지구상에 있는 모든 일을 해볼 수도 없을뿐더러, 경험이 편견을 심어줄 가능성도 생각해야 한다. 한번 해본 어떤 일이 몹시 끔찍했다면, 그 끔찍한 감각이 그 사람의 발목을 붙잡을지도 모른다. 그는 해당 일에 대해 긍정적으로 말하는 이를 믿지 못할 것이다.

경험만을 통해 삶을 이해할 수 있다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 때 그와 비슷한 일을 겪지 않은 사람은 공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가까운 이의 기쁜 일에 기꺼이 손뼉을 치는 것은 물론이고 타인의 아픔에 하염없이 눈물 흘리기도 한다. 상상력이 있기 때문이다. 잠시 동안이나마 그 사람이 되어 보았기 때문에, 축하도 위로도 할 수 있는 것이다. 되어 보는 일은 상상하는 일이다. 그리고 상상력은 독서를 통해 길러진다. 독서는 여기에 두 발로 선 채 저기 어딘가를 떠올리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책 속에서 우리는 선캄브리아 시대부터 90억 광년 떨어진 별에 이르기까지 시공간을 자유자재로 누빌 수 있다.

처음에 언급한 문장은 ‘그러나’로 시작한다. 앞선 문장을 읽는다. “현실은 현실에 대한 어떠한 표현보다도 더 크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에겐 상상력이 필요하다. 상상을 통해 현실에 맞서는 맷집을 키워야 한다. 이는 내가 책을 읽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은 시인
#독서의 이유#오은#타인의 자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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