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위헌 투표법 3년 6개월 방치한 채 개헌 외쳤나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26일 00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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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재인 대통령이 신년회견에서 6월 개헌을 강조하고, 국회에서 여야가 헌법 개정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이는 가운데 국민투표법을 개정하지 않으면 개헌 국민투표를 할 수 없는 상태라는 사실이 드러났다. 헌법재판소는 2014년 7월 재외국민의 투표권 행사를 제한한 국민투표법 제14조 1항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렸다. 이 조항은 헌재가 한시적으로 유효를 인정한 2015년 말까지 개정이 이뤄지지 않아 2016년부터 효력을 상실했다. 이에 따라 재외국민의 국민투표권이 사실상 박탈된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국민투표를 실시하면 투표가 무효가 될 수 있다.

지난해 대선에서 여야 후보들은 하나같이 올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를 약속했다. 이들이 위헌이 된 국민투표법을 국회가 방치하고 있는 사실을 알기나 하고 개헌을 약속했는지 모르겠다. 국민투표법 개정의 필요성은 지난해 말로 활동이 끝난 헌법개정 특위에서 한때 제기됐으나 심도 깊게 논의되지 않았다. 그러다 이달 들어 새로 특위가 출범하고 다음 달까지 개헌안을 발의하지 않으면 예정한 국민투표 일정을 맞출 수 없게 되자 모두들 새로운 변수를 만난 양 호들갑이다. 중앙선관위는 지난해 10월 국회에 대체입법 의견서를 냈지만 국회가 별 반응을 보이지 않는데도 가만히 있다가 최근 언론의 질의가 있자 비로소 “국민투표법 개정 없이는 국민투표 진행이 어렵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남의 일처럼 소극적인 자세다.

1987년 헌법이 효력이 다했다며 개헌을 촉구해온 언론이나 전문가 집단 역시 책임이 없지 않다. 헌재의 국민투표법 헌법불합치 결정에 따른 국회의 후속 조치에 충분한 주의를 기울이지 못한 본보부터 자성한다. 학계나 법조계 등 전문가 집단은 더 꼼꼼히 챙겨보고 시정을 촉구했어야 한다. 정치권도, 그들을 감시하는 쪽도 기본에 충실하지 못했다. 우리 사회 담론의 수준을 보여주는 부끄러운 일이다.

국회에는 언제부터인가 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을 무시하고 위헌 상황을 깔아뭉개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국회가 헌법불합치 결정이 내려진 법률조항을 개정하지 않아 입법 공백을 초래한 경우가 이 건 외에도 수십 건에 이른다. 국회가 정쟁에 정신이 팔려 입법기관으로서 최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을 3년 6개월간 방치한 탓에 국민투표법이 국민이 투표를 못하게 하는 법이 되고 말았다. 개헌 같은 국가적 대사(大事)를 추진하면서 막대한 비용과 시간을 들여 개헌 작업을 해놓고는 국민투표 절차가 미비해 개헌을 할 수 없다고 하면 이런 허망한 일이 또 어디 있겠는가.
#문재인 대통령 신년회견#6월 지방선거#6월 개헌#헌재의 헌법불합치 결정 무시#국민투표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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