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헌재]이준형의 눈물, 올림픽의 눈물

  • 동아일보
  • 입력 2018년 1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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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헌재 스포츠부 기자
이헌재 스포츠부 기자
이준형(22·단국대)은 씩씩했다. 손 안에 들어온 평창 올림픽 티켓을 마지막 순간 놓쳤지만 끝까지 당당했다. 시상대에 올라설 때도, 갈라 쇼를 펼칠 때도 미소를 잃지 않았다. 자기 대신 올림픽에 나가게 된 차준환(17·휘문고)의 어깨를 쓰다듬으며 축하의 말도 건넸다.

하지만 거기까지였다. 갈라 쇼 후 관중이 모두 빠져나간 경기장. 이준형은 절친한 동료 김진서(22·한국체대)와 함께 텅 빈 빙판을 돌았다. 참았던 눈물이 차가운 얼음 위로 떨어졌다. 마침내는 김진서를 끌어안고 하염없이 눈물을 쏟았다.

개인적으로 이준형과 친분은 없다. 하지만 그가 걸어온 길은 잘 알고 있기에 마음이 더욱 아련해졌다.

피겨스케이팅 유망주였던 그는 2014년 국제빙상경기연맹(ISU) 주니어 그랑프리 1차 대회에서 한국 남자 피겨 최초로 금메달을 땄다. 하지만 이듬해 교통사고로 허리를 다쳐 몇 년 동안 재기를 위해 몸부림쳤다.

그리고 다가온 올림픽 시즌. 이준형은 국가대표 선발전 1, 2차 대회에서 모두 우승했다. 지난해 9월 네벨호른 트로피 대회에 한국 대표로 출전해 16년 만에 남자 싱글 올림픽 티켓도 따 왔다. 7일 끝난 3차 대회를 앞두고는 차준환에게 20점 이상 앞서 있었다. 하지만 극심한 부담감 속에 두 차례나 엉덩방아를 찧는 등 최악의 연기를 펼쳤고, 거짓말처럼 역전을 당했다.

이준형에게 올림픽 출전은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꿈이자 희망이었다. 더구나 평창 올림픽은 한국에서 열려 더욱 의미가 컸다.

겨울 스포츠 시설이 열악한 한국에서 선수들은 무척 힘들게 운동을 한다. 운동량 자체가 엄청나다. 옆에서 보고만 있어도 안쓰러울 때가 많다. 몇 개 되지 않는 빙상장을 이용하려면 새벽 일찍 일어나야 한다. 선수도 선수지만, 그를 돌봐야 하는 가족들의 수고도 이만저만이 아니다. 그렇게 죽기 살기로 운동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바로 올림픽이다.

그래서인지 올림픽 무대는 유난히 눈물이 많다. 4년간 자신의 모든 것을 쏟아부은 선수들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흘린다. 기뻐서, 슬퍼서, 아쉬워서, 엄마가 생각나서, 때로는 아프고 고통스러워서 눈물을 쏟는다. 우아했던 ‘피겨 여왕’ 김연아도, 씩씩하고 쾌활한 ‘빙속 여제’ 이상화도 예외가 아니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몇몇 정치인의 남북 단일팀 관련 발언은 우려스럽다. 일각에서는 피겨스케이팅 팀 이벤트(단체전)와 여자 아이스하키 등에서 단일팀을 만들자는 의견을 내놓고 있다.

피겨에서 남북 단일팀이 구성되면 페어에 출전하는 한국의 감강찬-김규은 조가 설 자리가 없어진다. 25명으로 구성된 여자 아이스하키 팀에서도 몇 명이 출전권을 잃을 수 있다. 우리 선수들 엔트리를 가만히 두고 5, 6명의 북한 선수를 추가하는 방안도 나온다. 그렇다 해도 몇몇 선수는 경기에 나서지 못하고 그동안 쌓아올린 팀워크도 무너질 수밖에 없다. 피겨 페어 선수들과 여자 아이스하키 선수들이 메달 후보는 아니다. 그렇다 해도 그동안 그들이 흘린 땀을 누구도 쉽게 생각해서는 안 된다.

북한과의 관계 개선도 중요하지만 그 때문에 우리 선수들이 경기장 밖에서 눈물 흘리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다. 그들이 눈물 흘려야 할 곳은 경기장 안이다.
 
이헌재 스포츠부 기자 uni@donga.com
#평창 올림픽 티켓#이준형#차준환#남북 단일팀 발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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