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30 세상]잘 먹고 잘 사는 법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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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영석 록셔리 매거진 편집장
현영석 록셔리 매거진 편집장
‘꼬르륵.’

배 속에서 우렁찬 소리가 터져 나와 조용한 실내 분위기를 흐트러뜨려 놓고 말았다. 10분 간격으로 한 시간을 맞춰 놓은 알람은 잘도 무시하면서 허기가 일러주는 작은 기척에는 단번에 정신이 차려진다. 위장의 아우성을 진정시키려 밖으로 나와 주위를 어슬렁거렸다. 날은 3월 중순을 향해 가고 있지만 결코 만만치 않은 날씨였다. 마땅히 속을 채울 만한 곳을 발견하지 못했다. 차가운 바람을 맞으며 두리번거리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기 시작했다.

눈앞에 보이는 패스트푸드점의 유리문을 당겨 열었다. 이런저런 이유로 좀처럼 할인 행사를 멈추지 않는 매장은 봄을 핑계로 또 다시 이벤트를 잇고 있었다. 실내의 따뜻한 온기에 취해 한바탕 하품을 하며 메뉴판을 올려다보았다. 신학기까지 겹쳐 할인 내용이 그 어느 때보다 꽤 실해 보였다. 예전이었으면 ‘이게 웬 떡이냐’라며 반색을 했겠지만 선뜻 메뉴를 결정하기가 쉽지 않았다. 몇 주 전 필요 이상의 육식을 줄이자고 한 스스로의 약속 때문이었다.

설 연휴 때 일이다. “모처럼 실컷 먹어봐라”며 어머니께서 한 솥 가득 갈비찜을 해놓으셨다. 라면을 끓이듯 심심할 때마다 해먹을 수 있는 음식이 아니기에 반가운 마음으로 몇 점을 집어 들었다. 두툼하게 씹히는 고기 맛이 달콤했다. 인터넷 개인방송에서 인기가 많다는 먹(는)방(송) 진행자와 겨루어 봐도 절대 뒤지지 않을 정도의 표정이 지어졌다. 허나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아 이소룡도 울고 갈 만한 얼굴로 일그러졌다. 두툼한 살코기만큼이나 거대하고 물컹한 비계를 씹고 만 것이다. 돼지비계에서 올라오는 누린내가 순식간에 콧속을 가득 채웠고 급기야 골을 때리기 시작했다. 재빨리 입에 물고 있는 것을 뱉어낸 후 모터를 단 듯 연신 헛바람을 불어댔다. 후후, 환풍기처럼 입에 남은 날것의 여운을 몰아내며 문득 ‘살아있는 동물의 살점을 씹는 기분이 이런 걸까’라는 생각을 했다.

연휴 이튿날은 부산에서 아침을 맞이했다. 국제시장과 함께 부산의 원 플러스 원 코스라는 자갈치시장에 들렀다. 바다를 마주보고 있는 시장이라 이제껏 구경하지 못한 수산물들로 눈이 즐거웠다. 한 가게 앞으로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왜 저렇게 서 있나 궁금해 나 역시 발걸음을 멈추고 무리 속에 끼어들었다. 나무 도마 위에 곰장어의 머리가 송곳으로 고정돼 있었다. 꼬리가 팔딱팔딱 살아 움직였다. 칼을 든 아주머니께서 곰장어의 껍질을 빠르게 벗겨냈다. 핏기가 채 새어 나오기 전에 드러난 하얀 속살로 더욱더 고통스럽게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과한 감상일지도 모르겠다. 누군가 내 피부를 벗겨낸 것 같은 싸한 기분에 잠시 마음이 불편해졌다.

비계와 곰장어가 준 충격이 컸나 보다. 연휴 둘째 날부터는 그렇게 좋아하는 고기에 선뜻 손이 올라가지 않게 됐다. 이게 또 얼마나 갈지 모르지만 어찌 됐든 달걀까지 허용하는 느슨한 채식을 시작하게 됐다.

육식을 줄이고자 한 경험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구제역 파동이 전국을 휩쓸고 지나간 2010년, 듣도 보도 못한 참혹한 광경을 마주했다. 살아있는 동물이 땅속으로 묻히는 살풍경에 처음으로 육식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됐다. 육식에 대한 고민은 한 끼 음식이 어떤 과정을 통해 식탁 위로 올라오는지, 이전에는 애써 해보지 않았던 궁금증을 품게 만들었다. 매일 같이 입으로 넣고 있지만 정작 내 피와 살을 이루고 있는 것에 대해 전혀 알고 있는 게 없었다. 그 시절 나는 순진하게 정육점 간판의 사진을 떠올렸을 것이다. 광활한 들판 위에서 유유자적 풀을 뜯는 그런 평온한 모습 말이다. 음식 산업이 더 빠르게 더 많은 것을 공급하는 과정은 사진처럼 그렇게 평화롭지만은 않을 것이다. 그 과정을 알면 알수록 식탁은 저절로 템플 스테이가 될지도 모르겠다.

텔레비전 화면은 일분일초가 바쁘게 지지고 볶고 시식을 한다. 요 근래 우리 입에서 끊임없이 오르내리는 인기 주제 역시 단연 음식이다. 이렇게 웃으며 먹거리를 이야기하고 있지만 해마다 계속해서 발생하는 바이러스는 일순 우리를 공포에 빠뜨리기도 한다. ‘잡식동물의 딜레마’는 이렇게 커져만 가고 있다.

이제는 끈질기게 MSG만을 추적할 게 아니라 진짜로 잘 먹고 잘 사는 방법에 대한 깊은 고민이 필요할 때가 아닌가 싶다.

현영석 록셔리 매거진 편집장
#구제역#패스트푸드#갈비찜#국제시장#자갈치시장#MS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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