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덕 칼럼]‘결혼 장려’가 저출산 대책이라고?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8일 09시 3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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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혼 줄여 출산율 높이기’라니
‘노인 줄여 의료비 낮추기’와 같은 논리, 황당한 정책
소득과 여성교육 높아진 나라, 결혼 줄고 婚外출산 늘어난다
프랑스도 가족수당 선별복지로…무책임한 “무상보육” 집어치워라

김순덕 논설실장
김순덕 논설실장
푸핫.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이 지난주 ‘만혼(晩婚) 추세 완화’를 저출산 대책으로 내놨다는 기사를 본 순간 나는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2006년부터 66조 원을 저출산비로 퍼부었지만 합계출산율(1.19명) 반등에 실패했다며, 앞으론 초혼 연령 낮추기로 방향을 바꿔 2020년까지 1.4명을 만들겠다는 거다.

나도 어쩌지 못하는 과년한 내 딸을 장관이 시집보내주겠다니 고맙기 그지없다. ‘2000년 남자 29세, 여자 26세의 초혼 연령이 2013년 32세, 30세로 올라갔고 30세 전에 결혼하면 2명을 낳지만 30대 후반이면 0.8명으로 떨어진다’는 보도 자료도 맞을 것이다. 하지만 만혼 때문에 출산율이 낮으니 만혼을 줄여 출산율을 높이겠다는 정책은 황당하다. 고령화 때문에 의료비가 늘었으니 고령화를 줄여 의료비 낮추겠다는 것과 뭐가 다른가.

문 장관이 꼭 초혼 연령을 낮출 작정이라면 방법이 없진 않다. 국민소득과 여성 교육을 방글라데시 수준으로 끌어내리는 거다. 생활수준이 높아지면서 결혼이 늦어지는 건 이미 세계적 추세다. 우리가 만혼이라지만 프랑스 초혼 연령도 우리와 비슷하다. 스웨덴은 남 35.6세, 여 33.1세에 결혼해도 1.9명을 낳는다. 세계 인구의 89%가 결혼율 감소 국가에 살고 있을 만큼 결혼제도 자체가 흔들리는 판에 복지부 장관은 거꾸로 살 모양이다.

공공임대주택 결혼교육 같은 구체적 방안을 보면 세금이 또 허투루 날아갈 게 뻔하다. 싱가포르가 바로 결혼 예정자 또는 35세 이상 싱글에게만 공공주택 구매 자격을 주는 국가다. 그래봤자 남 30세, 여 28.5세에 결혼해 우리와 똑같이 1.19명을 낳는다. 미국에선 조지 W 부시 대통령 시절 연 7500만 달러 예산으로 61개 ‘결혼 프로젝트’ 교육을 했으나 지금까지도 결혼율은 늘어나지 않았다.

전문가들은 이제 좀 솔직해졌으면 좋겠다. 우리나라만 결혼, 연애, 출산을 포기한 ‘3포 세대’가 있지 우리보다 결혼 안 하는 호주는 1.93명을 낳는 이유 말이다. 다 알면서 말하지 않는 그 부분을 유엔이 ‘2014 인구상황’ 보고서에 적었다. “결혼과 출산의 연관성이 약해졌다. 아시아와 북아프리카를 제외하곤 지난 20년간 태어난 아기들의 절반이 (동거를 비롯한) 혼외(婚外) 출산이다.”

프랑스가 20년간 국내총생산(GDP) 대비 연 3.8%의 예산을 28가지 출산장려책에 퍼부은 것만으로 오늘날 2명을 낳게 된 게 아니다. 1999년 시민연대협약(PACS)이라는 이른바 ‘동거법’을 제정해 동거 커플의 아이들에게도 똑같은 혜택을 주면서 그해 1.79명이던 합계출산율이 이듬해 1.87명으로 껑충 뛴 것이다.

일본이 1994년 ‘에인절 플랜’을 시작으로 보육지원, 일·육아 양립 정책, 의식개혁 운동까지 온갖 대책을 쏟아내고도 작년 사상 최소 신생아 출생률(1.4명)을 기록한 건 남의 일 같지 않게 섬뜩하다. 일본처럼 가선 안 된다면서도 우리의 전문가들은 절대 하지 않는 제언을 뉴욕타임스가 사설로 썼다. “보수적인 일본에선 혼외 출생자가 2%에 불과하다. 정부가 그런 출산을 장려하진 않아도 같은 혜택을 주는 정책은 마련해야 한다”고.

물론 가장(家長) 고용-주부 무상노동의 가족의존적 일본 복지가 버블경제와 함께 무너지면서 여성의 결혼·출산 파업이 극심해진 측면도 있다. 한국은 일본보다 더한 가족의존적 복지라는 게 김성원 도쿄경제대 교수의 지적이다. 그런데도 공무원연금 부족분을 세금으로 메우기 위해 출산율을 높여야 한다면, 내 딸이 비혼모가 돼도 좋다고 할 자신은 없다. 그러니 혈세로 봉급 받는 문 장관은 제 돈 내놓을 것도 아니면서 “전업주부에게 (가정 보육 지원금을) 더 얹어 줘서라도 어린이집 과잉 수요를 해결하겠다”고 함부로 말하진 말아야 한다.

세상 모든 문제에 해결책이 있는 것은 아니다. 인구학자 피터 맥도널드는 “어떤 출산율 제고 정책도 획기적 출산율 증가를 가져오는 데 실패했다”고 했다.

그러므로 정부와 정치인들에게 부탁한다. 프랑스는 인구대체율 2.1명을 채우지 못했는데도 재정이 거덜 나 7월부터 가족수당을 선별 지급하기로 했다. 호주는 영리법인 어린이집을 허용해 보육료 규제 없이도 합리적 서비스로 직장맘의 마음을 편하게 해주고 있다. 제발 “무상보육이 기본 복지”라는 무책임한 주장으로 역사에 죄를 짓지 말란 말이다.

김순덕 논설실장 yur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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