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신석호]쿠바는 북한의 미래가 될 수 있을까

  • 동아일보
  • 입력 2015년 2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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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2005년 초 한국 북한학계에는 쿠바 공부 바람이 불었다. 이미 10여 년 앞선 1990년대 초 과감한 개혁 개방을 통해 경제위기를 극복한 쿠바를 보면 북한의 미래가 보인다는 가설이 설득력을 얻었던 때다.

그 유행을 따라 2007년 11월 처음 방문했던 쿠바의 거리 곳곳에서는 정말 북한의 현재와 미래가 보이는 듯했다. 쿠바가 여러 면에서 앞서가고는 있었지만 두 나라 모두 사회주의 계획경제에 시장 메커니즘을 도입하는 ‘이행기 사회주의’였고 계획과 시장이 공존하는 ‘혼합경제 체제’였다. 10년 늦기는 했지만 북한이 곧 따라갈 수 있겠거니 싶었다.

돌아와 완성한 논문과 기사에 북한과 쿠바가 ‘계획에서 시장으로 가는 제3의 길’ 위에 있다는 주제를 담았다. 1990년대 초 냉전 종식과 함께 급격히 체제 전환을 해 버린 옛 소련 등 동유럽 사회주의 국가들이 제1의 길이요, 그전부터 정치적으로는 공산당 1당 독재를 유지하면서 시장경제로 전환한 중국과 베트남이 제2의 길이라면 북한과 쿠바는 이와는 다른 제3의 길을 걸으려고 하는 것 같았다.

북한과 쿠바를 한 묶음으로 보려는 기자에게 당시 만난 한 쿠바인은 “어떻게 그런 이상한 나라와 우리를 비교할 수 있느냐. 자존심이 상한다”고까지 했다. ‘도토리 키 재기’ 같다는 생각에 속으로 웃음이 났던 기억이 생생하다. 그로부터 7년 2개월 만인 지난달 14∼17일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에 들뜬 현지 분위기를 취재하기 위해 쿠바를 두 번째 방문하고 나서는 북한과 동일시되는 자신들에 대해 마음 상해 있던 쿠바인들의 정서가 이해됐다. 엄연한 사회주의 나라로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체제를 기준으로 하면 아직 갈 길이 멀었지만 북한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훨씬 더 앞서가는 모습이다.

특히 자영업을 중심으로 한 민간경제 부문은 여느 자본주의 개발도상국가 못지않게 활성화된 상태였다. 거리에는 자영업 택시들이 넘쳐 났고 외국인을 상대로 한 민박집과 식당 등은 종업원을 마음대로 고용해 영업할 수 있었다. 집과 자동차도 공식적으로 사고팔 수 있다. 7년 전에는 볼 수 없던 변화다.

변화의 핵심에는 실용주의 리더십이 있었다. 2008년 2월 형 피델 카스트로에게서 공식적인 최고지도자 자리를 넘겨받은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은 특유의 실용주의적 사고를 정책에 반영했다. 2011년 제6차 공산당대회에서는 비효율적인 국가경제 부문 개혁과 공무원 100만 명 퇴출 방침을 선언했다.

비슷한 시기에 권력 승계를 했던 북한은 오히려 뒷걸음질을 쳤다. 김정일은 생전인 2009년 11월 화폐개혁을 단행해 시장을 때려잡으려 했다. 후계자 김정은은 부지런히 시장을 만들고 주민 경제와 국가에 도움이 될 사회 인프라를 확장하는 대신에 자신과 최측근 엘리트들만 즐길 수 있는 호화 놀이터와 스키장, 음식점 등을 만드는 데 외화를 낭비하고 있다. 북한에서도 자영업과 시장 거래가 이뤄지고 있지만 정부의 방임 아래 비공식적으로 이뤄지는 불법 행위로 언제든지 국가의 철퇴를 맞을 수 있다. 쿠바에서는 정부가 제도적으로 영업을 보장한다. 북한 자영업자들은 돈을 벌어 권력자들에게 ‘뒤를 잘 봐 달라’고 뇌물을 바치지만 쿠바 자영업자들은 당당하게 국가와 국민을 위해 세금을 낸다.

미국과의 국교 정상화 합의로 쿠바는 북한보다 한 차원 더 앞서가게 됐다. 미국이 내민 손을 잡을 수 있었던 자신감은 20여 년 개혁 개방 성과에서 나온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개혁 개방을 외면하고 핵·미사일 프로그램을 고집하는 북한. 아바나를 떠날 때 ‘쿠바까지 변하고 있는데 북한은 과연 어느 길을 갈 것인가’ 하는 묵직한 물음이 밀려왔다.

신석호 워싱턴 특파원 kyle@donga.com
#쿠바#북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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