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 컨슈머/전문가 칼럼]이젠 돼지고기도 이력제 시대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2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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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영 축산물품질평가원장

“비싼 한우고기를 속아서 사먹느니 싼 수입고기를 사먹겠다”라는 말이 소비자들 사이에 회자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나 국내산 축산물에 대한 불신이 팽배했던 2009년 6월 쇠고기이력제가 전면 시행됐고, 그로부터 5년이 지나는 동안 이 땅에서 수입쇠고기의 둔갑판매는 사라져갔다. 이제 소비자는 식육판매점 앞에서 한우고기에 대해 더 이상 의심하지 않는다. 더불어 국내 한우산업은 더욱 성장해 이력제 도입 당시 244만 두였던 사육 마릿수가 지금은 273만 두에 이르고 있다.

반면 돼지고기는 상황이 다르다. 대부분의 수입육은 냉동상태에서 수입되고, 유통기간도 길어 품질 면에서 국내산과 비교가 되지 않지만 상대적으로 높은 가격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은 곧 수입돼지고기가 국내산으로 둔갑 판매될 수 있는 개연성을 충분히 가지고 있음을 의미하며 실제로 원산지 표시위반이 가장 빈번하게 일어나는 품목으로 돼지고기가 지목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나아가 일반 돼지고기가 맛이 좋다고 알려진 국내 특정 지역의 돼지고기로 둔갑되기도 한다.

뿐만 아니다. 2010년 말부터 이듬해 초까지 전국적으로 번진 구제역으로 전국에서 사육되고 있던 돼지의 34%인 331만두가 매몰됐고, 그 보상비만도 약 3조 원이 지출됐다. 이 같은 직접적인 피해 외에 관련 산업의 위축, 방역 등으로 인한 관광산업 여파 등 간접 피해까지 따르니 국민이 우리나라 돼지를 바라보는 시각이 늘 곱지만은 않다.

이러한 현실 속에 28일부터 돼지고기이력제가 전면 시행된다.

이력제도는 영어로 ‘Traceability’라고 표기하는데 ‘추적’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농장에서 질병이 발생했을 때 해당 질병의 원인균에 감염된 가축이 어디에서 왔는지 또는 어디로 이동됐는지를 기록에 의해 빠른 시간 내에 파악할 수 있어야 그 이동 경로를 추적해 회수, 폐기 등의 조치를 신속하게 취할 수 있다. 빠른 방역조치는 전염병 확산을 조기에 차단할 수 있어 경제적으로도 큰 효과가 있다.

이와 같이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제도로서 ‘돼지고기이력제’를 도입하는 과정이 쉽거나 단순하지 않다. 모든 농장은 돼지를 사오거나 팔 때 이동 현황을, 한 달에 한 번씩은 사육 현황을 신고해야 한다. 도축장에서의 업무는 더 다양하고 복잡하다. 도축 후 모든 돼지에 ‘이력번호’를 표시해야 하고, 위생검사와 품질에 대한 평가결과 등을 전산으로 등록하도록 돼 있다.

도축한 돼지를 부분육으로 만드는 가공장과 직접 소비자를 대상으로 고기를 판매하고 있는 식육점에서도 거래 내용을 기록하거나 전산으로 신고해야 하고, 식육판매표지판 또는 포장지에 이력번호를 표시해야 한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을 통해 볼 때 새로운 규제가 도입된다거나 원가가 상승함으로써 소비자의 부담만 커지는 것 아니냐는 다소 부정적인 시각도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우리 국민에게 더 안전하고 품질 좋은 돼지고기를 공급한다는 측면에서 볼 때 장기적으로 긍정적인 효과를 가져다 줄 것이 분명하다.

이번에 새로 도입되는 ‘돼지고기이력제’는 정부 또는 관련 기관만의 노력으로는 성공적으로 정착되기 쉽지 않다. 축산농가부터 도축장, 가공장, 판매장뿐만 아니라 관련 기관과 협회 등이 함께 노력을 경주해야 한다. 또한 소비자가 돼지고기를 판매하고 있는 식육점에서 이력번호가 잘 표시되고 있는지 세심히 살펴주는 관심도 필요하다.

주요 농업 선진국과의 FTA가 확대되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나라 한돈(韓豚)산업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은 가운데 이를 극복할 수 있는 유력한 대안 중 하나가 ‘돼지고기이력제’다.

당장 식육점에서 돼지고기를 살 때 해당 제품에 대한 다양한 이력정보를 알 수 있는 국내산과 그렇지 않은 수입육이 같이 진열돼 있다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답은 분명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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