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아이폰6 대란’ 일으킨 反시장적 단통법 폐지하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1월 4일 03시 00분


단말기 보조금 상한선을 정해 전 국민에게 고른 혜택을 주겠다던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이 한 달 만에 ‘종이호랑이’가 돼 버렸다. 그제 새벽 서울과 수도권 곳곳의 판매점은 79만8000원짜리 애플 아이폰6를 10만∼20만 원대에 사려는 고객들이 몰려 북새통이 벌어졌다. 어제 정부가 “아이폰6의 불법 보조금에 모든 수단을 강구해 후속 조치를 하겠다”며 강경 대응 방침을 밝히자 이번엔 이들 판매점이 미개통자의 계약을 임의로 취소해 대혼란이 일어났다. 잘못된 단통법을 만든 정부가 자초한 시장 왜곡이자 정책 실패다.

가격 경쟁을 제한한 단통법은 태어나선 안 될 반(反)시장적 법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정부가 판매점 보조금을 포함한 상한을 34만5000원으로 정하고 매장마다 공시하게 한 것은 가격담합을 유도한 것과 마찬가지다. 이런 상황에서 그제 새벽 사태는 예견된 것이고 앞으로도 언제든 일어날 수 있다. 단통법 시행 후 신제품 단말기 값이 비싸져 팔리지 않자 판매점이 자신들의 인센티브까지 고객에게 얹어주며 살아남으려고 몸부림을 친 결과다. 규제로 옭아매는 정부에 판매점과 고객이 저항한 시장경제의 생생한 현장인 것이다.

소비자들이 최신 고가 단말기를 원하는 현실을 무시하고 “가계통신비를 내리겠다”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에 맞춰 정부가 밀어붙인 것이 단통법이다. 보조금 상한선을 단말기가 신형이든 구형이든, 어떤 요금제를 쓰든 균등하게 적용하라는 평등주의 산물인 셈이다. 소비자는 최신 단말기가 비싸서 못 사고, 제조사와 판매점은 못 파는 바람에 단통법 시행 후 신규 가입자율과 단말기 판매량이 60%가량 감소하는 등 통신시장이 꽁꽁 얼어붙었다.

그런데도 미래창조과학부와 방송통신위원회는 중저가 요금제 및 중고 단말기 가입자가 증가했다며 단통법의 성공을 자화자찬하고 있다. 통신사는 속도 빠른 LTE 4G 서비스를 제공한다고 광고하는데 정부가 철 지난 3G 단말기나 중고 단말기만 쓰도록 부추기는 건 통신산업 발달을 막는 시대착오적 정책이 아닐 수 없다. 박근혜 정부는 입만 열면 규제 개혁을 외치지만 규제로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정책 당국자들이 이런 ‘괴물’을 만들어냈다. “가계통신비 연 50만 원 절감”이라는 관료들 말만 믿고 ‘청부입법’을 맡아 제대로 된 토론도 없이 통과시킨 국회도 책임이 가볍지 않다.

잘못된 법은 빨리 고치든가 폐지해야지, 신줏단지 모시듯 할 일이 아니다. 1년이나 수능 세계지리 8번 문항의 오류를 바로잡지 않다가 숱한 피해자를 만든 사태처럼 단통법을 몰아갈 셈인가. 정부는 자신들의 잘못을 소비자와 업자에게 떠넘길 일이 아니다. 단통법을 폐지해 통신시장을 기업과 소비자에게 돌려주어야 한다.
#아이폰6 대란#단통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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