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허숙]고교생 학습부담 더 줄여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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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숙 경인교대 교수·전 한국교육과정학회장
허숙 경인교대 교수·전 한국교육과정학회장
아무리 맛있고 좋은 음식이라도 많이 먹으면 탈이 나기 십상이다. 우리 학교 교육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다고 생각한다. 가르치는 사람은 자기가 맡은 교과가 제일 중요하다면서 더 많은 수업시간을 요구한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인지 모른다. 하지만 수업시간은 제한되어 있는데 가르치는 사람들은 모두 자기 과목이 중요하다고 하니, 배우는 학생들은 한 학기에 10개가 넘는 교과목을 똑같이 공부해야 하는 과중한 학습 부담에 시달리게 된다. 그뿐만이 아니다. 많은 내용을 가르치려다 보니 대충대충 진도 나가기에 바쁘고, 학생들은 수박 겉핥기 식으로 학습할 수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 우리 학교 교육의 슬픈 자화상이다.

최근 교육부는 문·이과 통합 교육과정을 개발하겠다고 했다. 융합과 통섭이 강조되는 시대이니만큼 문과 학생들도 과학적 지식이나 안목을 갖출 필요가 있으며 자연과학이나 공학 계열을 지망하는 학생에게도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도록 가르치겠다고 하는 생각은 올바른 방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모든 학생에게 국어, 영어, 수학 과목을 똑같이 많이만 가르치면 융합적 창의인재가 길러질 것이라고 믿는다면 큰 잘못이다. 가뜩이나 필수 과목이 많은데 국어, 영어, 수학 교육을 강화하고 과학 분야의 모든 과목과 사회 분야까지 필수로 부과한다면 이는 다양성의 시대에 역행하는 획일화의 논리라고 비난받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교육 내용의 분량을 적정화하여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줄여 주는 것이 옳다. 그래서 학생들 스스로 탐구해 보게 하고, 엉뚱한 생각도 한번쯤 해볼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창의적 능력은 말로써 가르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체험과 분위기를 통해서 길러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미래 사회를 지향하는 새로운 학교교육 과정을 마련하는 시점에서 우리가 가장 경계해야 할 점은 무조건 많이 가르치거나 가르치겠다는 욕심이다. 자꾸 새로운 교과를 만들어 학생들에게 학습을 강요하거나, 필수 교과를 강화하여 학생들의 학습 부담을 가중시키는 일은 결코 미래 사회가 요구하는 교육의 모습이 아니다.

허숙 경인교대 교수·전 한국교육과정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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