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청와대는 부처 국과장급 인사에서 손떼라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7월 3일 03시 00분


세월호 참사 수습을 위해 지방예산과 소방방재청 예산을 총괄해야 할 기획재정부 행정예산심의관은 2월부터 공석(空席)이다. 박근혜 정부의 핵심 정책인 규제개혁 실무를 맡을 국무조정실 규제조정실장 자리 역시 5개월 이상 비어 있다. 정부 각 부처에서 중추적 역할을 하는 국장급 이상 자리 가운데 51곳이 공석인 바람에 정책 집행이 미뤄지고 공무원들은 손을 놓고 있는 실정이다. 기재부가 매년 6월 말 발표하는 ‘하반기 경제정책방향’의 일정도 잡지 못해 악화되고 있는 한국경제를 살릴 시기를 놓칠까 걱정스럽다.

역대 정권을 돌아봐도 정부 고위직이 이렇게 오랫동안 대거 공백 상태인 사례는 찾아보기 힘들다. 4월 세월호 참사가 터지면서 모든 인사가 돌연 중단된 탓도 있을 것이다. 그 후 국가개조를 위한 인적쇄신 방침이 나왔지만 국무총리 후보자의 잇따른 낙마로 장관 임명이 늦어지면서 국장급 인사가 순연됐다. 관피아(관료+마피아) 척결이 화두로 떠올라 고위 공무원들을 산하기관에 낙하산으로 보내지 못하게 되자 각 부처에서 인사에 손을 놔버린 측면도 없지 않다.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청와대가 국장급 인사까지 간여하는 데 문제의 핵심이 있다.

전현직 장관들과 공공기관장, 새누리당 의원들은 청와대에서 작년부터 각 부처의 국장급 인사를 직접 챙겼다고 전한다. 미래창조과학부는 과학기술과 정보통신기술 분야 국장급을 교차 인사하려다 청와대의 재가를 받느라 한 달 이상 더 걸렸고, 기재부도 국장급들을 전보하는 데 청와대를 거쳐야 했다. 청와대 OK를 받기까지 한 달은 짧은 편이고 두세 달 걸리는 경우도 많다. 세 명의 후보를 올렸다가 청와대가 점지한 후보가 없어 다시 추가해 올렸다는 증언도 잇따른다. 청와대가 정무직인 장차관을 넘어 실무직인 국장급 인사는 물론 과장급까지 이렇게 간섭한 것은 과거에 없던 일이다.

오래 비워도 괜찮은 자리라면 차라리 없애는 건 어떤가. 청와대에서 ‘꽂는 인사’가 능력 위주 아닌 학연 지연에 따른 봐주기 인사라면 국정 농단이다. 국과장 인사도 뜻대로 못하는 허수아비 장관이 부처를 장악하고 소신을 펼 수 있을 리 만무하다. 책임장관제는 박근혜 대통령의 공약이었다. 국정쇄신에 1분 1초가 아깝다면 대통령과 청와대는 장관들에게 인사의 권한과 책임을 돌려줘야 한다. 그러고 나서 국민 눈높이에 맞는 총리와 장관감을 고르는 본연의 인사를 똑바로 하기 바란다.
#세월호 참사#지방예산#소방방재청 예산#박근혜#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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