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오철호]매니페스토가 국가개조의 시작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5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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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철호 한국정책학회장
오철호 한국정책학회장
마치 블랙홀처럼 세월호 참사가 모든 것을 빨아들이고 있다. 6·4지방선거가 코앞에 닥쳤지만 조용하다 못해 박제화가 된 듯한 느낌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6·4지방선거를 외면할 수 없고 오히려 더욱 관심을 가져야하는 이유는 이번 참사의 원인이 시스템, 제도의 미흡보다는 결국은 인재(人災)라는 점에 주목하기 때문이다.

선거는 기본적으로 국민을 대표하여 국민에게 영향을 미치는 정치, 행정행위 등을 담당할 대리인을 선택하는 행위이다. 따라서 누구를 선택하느냐는 곧 국민의 삶의 질과 직결된다. 문제는 선거에서 제대로 된 후보를 선택하지 못한다면 언젠가는 더 큰 국가적 어려움이 발생할 수 있다는 잠재적 두려움이다. 두려움이 큰 만큼 의도적이라도 이번 선거에 관심을 갖고 주민을 중심에 두고 제대로 일 할 수 있는 지역일꾼을 뽑아야 한다.

모든 선거에서 유권자가 특정한 후보를 선택하는 데는 다양한 요인이 작용한다. 규범적으로는 합리성에 기반한 투표행위 즉, 후보자들의 선거공약을 분석하고 비교하여 그 결과를 토대로 특정한 후보를 선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가 선거공약을 주목하는 이유는 선거공약은 후보자와 유권자간의 심리적 약속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그러한 공약분석이나 비교를 꼼꼼히 수행할 수 있는 유권자의 시간과 노력 등에 커다란 제약이 있게 마련이다. 따라서 후보들에 대한 타당한 판단을 위하여 선거공약을 국민이 쉽게 이해하고 소화할 수 있도록 핵심적이며 단순하게 정리하는 과정이 요구된다. 결국 후보자와 관련한 불확실한 상황을 해소하기 위한 정보수집의 비용을 부담하지 않으려는 일반유권자들의 합리적 선택을 돕기 위하여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주는 매개체가 필요하다.

우리나라의 경우, 2006년 5·31지방선거에서부터 시작된 매니페스토 운동이 바로 그것이다. 혈연·학연·지연 등의 연고주의와 비방, 선심성공약, 금권 등을 통하여 당선되려는 선거관행을 극복하고 정책으로 승부하는 선거문화 개혁운동이라고 할 수 있다. 그동안 매니페스토 운동은 우리사회에 '약속과 실천'이라는 사회적 자본 형성에 디딤돌 역할을 하였음을 부인하기 어렵다.

반면에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실시한 전국유권자의식조사결과를 보면 지방선거의 경우 유권자들이 투표시 인물과 능력을 정책이나 공약에 비하여 여전히 더 많이 고려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정책공약 중심의 선거문화혁명이 오히려 더욱 강력하게 필요한 대목이다.

지방선거가 정책공약기반으로 실시되기 위해서 무엇보다도 유권자가 중심이 되는 선거문화구축이 필요하다. 그동안 매니페스토 운동은 선거관리위원회와 일부 시민단체·언론·학계 등 전문가 중심으로 추진되어 왔으나, 이제는 유권자가 직접 공약을 제안하고 공약 검증과 평가에 직접 참여하면서 정책을 기반으로 투표하는 유권자중심 선거문화운동이 요구된다. 또한 선거 때만 반짝하는 공약분석보다는 선거후 공약이 어떻게 정책화되어 집행되는지, 지역발전이나 현안해결 등 성과는 무엇인지를 생애주기관점에서 체계적으로 모니터링하여 유권자와 투명하게 공유할 때 정책선거를 피부로 느끼고 생활 속에서 학습할 수 있을 것이다.

선거가 요란할 필요는 없다. 조용한 가운데 우리지역을 제대로 이해하고 현란한 말보다는 묵묵히 유권자와의 약속을 이행하는 능력있는 대표자를 선택하는 것이 바로 국가개조의 시작이 아닐까싶다.

오철호 한국정책학회장
숭실대학교 사회과학대학 행정학부 교수
#6·4지방선거#세월호 참사#정치#매니페스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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