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두영]초딩교수,개근교수,적자교수… 싼학교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3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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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최근 몇 년 사이에 ‘○○교수’라는 명함을 내미는 사람이 부쩍 늘어났다. 초빙교수, 객원교수, 겸임교수, 연구교수, 강의교수, 석좌교수, 특임교수, 전문교수, 기금교수, 외래교수, 임상교수, 계약교수, 대우교수, 예우교수…. 그 종류가 족히 20가지는 넘어 보이는데 융합의 추세를 좇아서 그런지 강의초빙교수, 명예특임교수처럼 ‘융합적인’ 직함도 눈에 띈다.

요즈음 떠도는 우스개를 보면, 교수는 ‘아무도 모르는 걸 가르치면서 사기를 칠 수 있는 경지에 이른 사람’으로 정의된다. 박사는 ‘나만 모르는 줄 알았더니 남들은 정말 아무것도 모르더라는 사실을 증명한 사람에게 주는 학위’란다. 자질이 의심스러운 ‘초딩교수’(초빙교수), 돈 되는 자리만 찾는 ‘개근교수’(객원교수), 예산만 축내는 ‘적자교수’(석좌교수)… 교수직에 대한 조롱이 이어진다.

이르면 내년부터 교수직이 또 하나 늘어난다. 아직 명칭은 정해지지 않았지만 가칭 ‘산학협력교수’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가 최근 박근혜 대통령에게 보고한 ‘공과대학 혁신방안’에 따르면 논문을 발표한 실적이 없어도 기업 근무 경력을 연구실적으로 환산해 대학에서 산학협력교수로 임용할 수 있게 된다. 특허, 기술이전, 사업화, 연구개발 등 산학협력 실적으로도 공대 교수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다.

자문회의에서 박 대통령은 ‘창조경제 전진기지’로서 공대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방점을 찍었다. 공대(서강대 전자공학과) 출신 대통령이 공대의 혁신을 주문한 것이다. 공대가 전진기지라면 산학협력교수는 전진기지의 ‘장교’다. 연구개발 전선의 지휘관으로서 산학협력교수의 무게가 느껴진다. 그런데 전진기지의 ‘병사’는 어디 있을까?

많은 대학이 산학협력단을 운영하고 있고 일부 대학은 산학협력중점교수나 산학협력코디네이터를 두고 있다. 산학협력단은 정부에서 산학 협력과제를 따내고 관리하는 차원에 그치고 있고, 산학협력중점교수는 전임교수 자리만 기웃거리고 있으며, 산학협력코디네이터는 대부분 연봉이 낮은 계약직으로 단순 행정업무에 매여 있다.

‘창조경제 전진기지’의 ‘장교’가 새로 부임하면 ‘병사’들이 오합지졸(烏合之卒)처럼 보일 게 뻔하다. ‘병사’들이 허드렛일로 바쁘고 사기마저 떨어져 있기 때문이다. ‘장교’는 ‘병사’들을 어떻게 양성하고 지휘할 수 있을까? 상부 지휘계통도 마찬가지다. 관련 부처가 과학기술(미래부)과 교육(교육부)과 산업(산업부, 중기청)으로 분산되어 있다. 눈치 볼 곳이 많으면 ‘장교’가 현장을 지휘하기 어려울 수밖에 없다.

대통령이 주문한 ‘공대 혁신’의 범위는 공대에 한정되지 않는다. 혁신의 목적이 ‘창조경제의 전진기지’이기 때문이다. 평가지표를 바꾸는 정도로 공대가 혁신될 리 없다. 전진기지의 병사로서 포괄적인 개념의 산학협력 코디네이터를 양성해야 한다. ‘창조경제’라는 국정 전략을 수행할 ‘병사’를 양성하기 위해, 일자리 창출이라는 국정 과제를 달성하기 위해 ‘산학협력 코디네이터’라는 새로운 직군이 필요하다.

사농공상(士農工商)의 낡은 가치관도 공대 혁신의 걸림돌이 될 것이다. 조교수→부교수→정교수로 이어지는, 교육과 연구 위주의 전임교수 진입장벽을 높이높이 쌓으려는 ‘교육마피아’의 견제에서 벗어나야 하고, 대중에게서도 인정받도록 해야 한다. 공대를 혁신하기로 했으면 산학(협력)교수는 성과를 내야 하고 그만큼 대접을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나만 소홀해도 산학교수는 ‘싼학교수’로 조롱받게 될 것이다. ‘싸게 학교에 들어왔다’는 뜻이다.

허두영 과학동아 편집인 huhh20@donga.com
#산학협력단#창조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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