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이진영]복근 사는 여자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4월 1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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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진영 문화부 차장
이진영 문화부 차장
‘미스터쇼’를 봤다. 평균 키 185cm에 몸 좋고 잘생긴 남자 8명이 나오는 국내 최초의 여성 전용 성인쇼다. 쇼걸, 아니 쇼보이(show boy)들은 ‘길을 걸을 때 쏟아지는 여성들의 시선으로 보행에 불편을 느끼는 분’ ‘여성들 앞에서 댄싱머신으로 변할 수 있는 분’이라는 연출자 박칼린의 오디션 기준을 통과한 이들로, 70분간 청바지에 흰 티셔츠, 양복, 교복, 군복을 갈아입고 나와 근사한 몸매를 뽐냈다. 지난달 27일 시작한 쇼는 주 10회 공연에 377석의 90%가 찰 정도로 인기다. 관람 후기를 보면 “쇼가 부실했다”는 일리 있는 비판은 “오감이 호강했다” “시즌2가 기대된다” “핫한 남자들, 불탄 여자들” 같은 환호에 묻혀 찾기 어렵다.

연출자가 ‘여성만 입장 가능’이란 조건을 단 건 신의 한 수였다. 처음 보는 성인쇼인 데다(시선을 어디에 두어야 하나 고민된다) 엉성한 퍼포먼스에도 박수치고 깔깔댔던 이유는 여자들끼리였기 때문이다. 마치 부산 사람이 롯데 팬들에게 둘러싸여 응원하는 재미에 룰도 모르는 야구 경기를 보는 기분이랄까. 수위가 높아질수록 “꺄악” “와우” 하는 소리도 커졌고, 쇼의 ‘절정’에 이르렀을 땐 만루홈런이 터진 듯 귀청이 떨어져라 환호를 쏟아냈다. 남자들과 같이 있었더라면 마치 한일전을 일본인들과 섞여 앉아 보는 것처럼 분위기가 썰렁했을 것이다.

반대편에서 야유가 터져 나오면 우리끼린 더 열을 올려 응원하기 마련이다. 남자들은 미스터쇼 공연 소식에 “대체 뭘 하기에 우린 못 보게 하는 거냐”고 역정을 냈는데 이는 공연장의 열기를 더욱 뜨겁게 달궜다. ‘여자와 개는 출입 금지’라는 남성 전용 클럽 시절을 떠올리며 복수의 쾌감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시각은 지배의 의도가 담겨 있어 남성적이라고 했던가. 오랫동안 바라봄의 대상이었던 여성들에게 남자 무희들의 야릇한 포즈를 보는 일은 어색하면서도 신선한 경험이었다.

미스터쇼의 등장은 여성용 성 산업의 본격적인 시작을 예고한다. 학력과 구매력 모두 ‘남(男)부럽지 않은’ 30, 40대 여성들은 문화 시장의 큰손이다. 남자들만 나오는 뮤지컬과 연극, 주름 자글자글한 여배우가 솜털 보송보송한 남자 배우와 사랑에 빠지는 드라마와 영화가 줄줄이 출시되고 있다. 미스터쇼 관람 후기에 올라온 글을 인용하면 ‘40대 직장인 유부녀들에게 준 선물 같은 공연’ ‘여고 동창회하기 딱 좋은 공연’을 찾는 수요는 앞으로 더욱 늘어날 것이다.

이를 보는 사회의 시선은 불편하다. 여배우 벗기는 저질 연극엔 눈감고 미스터쇼만 문제 삼는, 호스티스가 나오는 드라마는 ‘15금’인데 호스트가 나오면 ‘19금’으로 분류하는 불균형도 존재한다. 하지만 “왜 너희들은 되고 우린 안 되느냐”는 논리는 말이 안 된다.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던 함무라비 법전의 시대도 아니지 않은가.

미스터쇼가 인기 있는 건 수위 조절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입담 좋은 남자 진행자가 관객과 미스터들 사이를 오가며 흥을 돋우면서도 ‘선’을 넘지 않게 조절한다. “엄마랑 또 보러 오겠다”는 관객도 있다. 성(性) 상품화는 수요자가 남자건 여자건 나쁜 거다. 여성용 성 산업의 등장이 부끄러운 성 산업 규모를 키우기보다 남성들의 비뚤어진 성문화를 돌아보게 하고 건전화하는 데 기여했으면 한다. 쇼는 계속돼야 한다지만 미스터쇼보다 더 나가는 쇼가 나오진 않길 바란다.

이진영 문화부 차장 ecole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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