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변영욱]한국에 파파라치는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3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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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영욱 사진부 차장
변영욱 사진부 차장
한때 사진기자들은 신문에 사용되는 사진을 제공하는 거의 유일한 존재였다. 하지만 지금은 연예인과 스포츠 스타들이 직접 자신들의 모습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인터넷에 공개한다. 올 2월 이상화 선수의 페이스북을 통해 공개된 소치 겨울올림픽 한국 여자 대표 선수들의 숙소 사진이 신문에 게재된 게 대표적이다.

이런 사진들의 특징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준다는 거다. 소속사들은 연예 매체 기자들에게 보도 자료를 보내 촬영 기회를 안내한다. 협찬을 받은 옷과 모자 가방 등을 홍보하기 위해서다. 이렇게 촬영된 사진은 인터넷을 뜨겁게 달군다. 물론 누리꾼 중 아무도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한국의 인터넷 매체 디스패치는 이달 6일 소치 겨울올림픽 피겨 은메달리스트 김연아의 열애 사실을 사진으로 증명했다.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김연아 선수와 연인의 모습을 촬영한 것이다. ‘신속한 처리’라는 뜻의 디스패치는 미국의 지방 언론사 이름에도 많이 사용된다. 김연아 선수의 소속사는 곧바로 열애 사실을 인정했다.

디스패치는 사진을 게재하고 싶다는 본보의 요청을 정중히 거부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모두에 판매하지 않겠다는 입장이었다. 다만 네이버와 올레TV 등을 통해 사진 파일을 대량 공개했다.

파파라치는 이탈리아어로 파리처럼 웽웽거리며 달려드는 벌레를 의미하는 파파라초의 복수형이다. ‘몰래 촬영한 후 매체에 파는 프리랜서 사진가들’ 정도가 될 것 같다. TV 시청자들이 파파라치를 ‘몰래 찰칵꾼’으로 번역해 이름 붙인 적이 있다.

디스패치는 과연 파파라치일까. 현직 취재기자와 사진기자 선후배들에게 디스패치 현상에 대해 정의를 내려보라고 부탁했다. ‘더도 덜도 아닌 파파라치’에서부터 매너 있는 파파라치, 새로운 대안 매체, 탐사보도, 심층 기획취재 등 다양한 평가가 줄을 이었다. 하지만 몰래 찍긴 했어도 사진을 팔지 않았기 때문에 파파라치라고 단정하는 것은 과하다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이런 형태의 사진이 계속 유통될지 여부다. 망원렌즈 성능이 좋아지고 어두운 곳에서도 사용할 수 있는 카메라가 나오면서 먼 곳에 숨어 촬영하는 것은 점점 쉬워지고 있다. 한국의 오프라인과 온라인 신문 및 잡지에 소속된 사진기자는 1000여 명에 달한다. 이들의 사진 중 몇 장만이 대중의 관심을 받는 만큼 평범한 사진으로는 승부가 나지 않는다. 모두 새로운 분야를 찾고 있다. 고독하고 고민스럽다는 말도 들려온다. 법과 언론중재단체도 호의적이지 않다. 우리나라는 초상권이 엄격한 편이다. 길거리에서 시민의 얼굴을 촬영해도 웬만하면 초상권에 저촉된다. 남의 사생활을 거침없이 소비하는 한국의 인터넷 환경과는 거리가 있다.

실제로 대법원은 지난해 6월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이 제기한 사생활침해금지 소송 상고심에서 디스패치 측에 1500만 원 배상 판결을 내렸다. 돈은 안 되고 법은 엄격한 상황에서 파파라치가 한국에 자리를 잡는 건 아직 요원해 보인다.

변영욱 사진부 차장 cu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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