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남대문경찰서 문턱에서 벌어지는 ‘섬 노예’ 거래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2월 14일 03시 00분


서울역 주변은 노숙인들의 집합소다. 지하철 5호선 광화문역에는 밤만 되면 노숙인들이 모여 종이박스를 가림막으로 잠을 청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들을 유인해 외딴 섬의 염전에 팔아넘기는 ‘현대판 노예상인’들이 대명천지(大明天地)에 활개를 치고 있음이 동아일보 취재 결과 드러났다. 이들은 인력소개소 직원이라며 “밥도 주고 재워 주고 담배도 준다”고 노숙인들을 현혹해 전남 신안 등의 염전과 김 양식장에 팔아넘겼다.

서울역 바로 앞에는 남대문경찰서가 있다. 경찰은 코앞에서 충격적인 거래가 이뤄지는데도 낌새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섬 노예’가 된 노숙인들은 견디기 힘든 중노동을 하고 몽둥이로 폭행을 당하기도 했다는 것이 피해자의 증언이다.

최근 한 장애인이 신안군의 외딴 섬에서 5년 넘게 감금 상태에서 일하다 가까스로 탈출하면서 현대판 노예 문제가 사회적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장애인들은 섬에서 탈출하려 했지만 주민 신고로 붙잡혔고, 해양경찰에 도움을 청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사실 여부를 가려 인권 침해에 대해 엄중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노숙인과 지체장애인들은 우리 사회가 보듬어야 할 사회적 약자다. 치열한 경쟁에서 뒤처졌거나 선천적으로 신체 및 정신적 약점을 갖고 태어나 복지 사각지대에 방치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섬 노예 문제는 과거부터 되풀이되고 있으나 좀처럼 근절되지 않고 있다. 2008년에도 부산해양경찰서가 생활정보지 광고를 보고 찾아온 노숙인과 장애인 등 100여 명을 신안 일대 새우잡이 어선과 염전, 양식장 등에 팔아넘기고 1억4000만 원을 챙긴 일당을 검거한 적이 있다.

정부는 복지국가를 말하기 전에 노숙인의 인권부터 챙겨야 할 판이다. 문형표 보건복지부 장관은 어제 국회에서 “취약 지역의 장애인 인권 문제에 대해 실태조사를 벌이겠다”고 말했다. 경찰도 뒤늦게 전국 염전 등을 대상으로 집중 단속에 나선다고 한다. 정부는 사건이 커질 때만 법석을 떨다가 손을 놓아버려서는 안 된다. 누구나 인권과 민주를 외치는 시대에 섬 노예 같은 인권 유린은 용납될 수 없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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