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방하남]임금체불이 고용질서 무너뜨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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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
우리나라 수출 규모가 세계 7위이며 수출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하는 품목 수도 세계 14위라는 통계가 최근 발표되었다. 경제성과를 반영하듯 설 명절에 보너스를 지급하는 기업도 작년보다 조금 증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이런 소식이 서글프게 다가오는 이들이 있다. 바로 임금체불로 인해 생활고를 겪고 있는 근로자들이다.

2013년 국내에서 발생한 체불임금은 1조1930억 원. 피해 근로자는 26만7000명에 달한다. 기업 규모별로는 100인 이하 기업에서 85.5%가 발생했다. 업종별로는 제조업(32.7%)과 건설업(21.8%)의 비중이 컸다.

상대적으로 저임금 근로자가 많은 소규모 제조업에서 체불은 생계에 심각한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건설근로자의 경우 일감도 일정치 않아 임금을 제때 받지 못하면 상황은 더욱 심각해진다. 하지만 체불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심각성에 비해 훨씬 무디다.

급속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계약문화가 제대로 정착하지 못했다. 정부도 소액의 벌금형에 그치는 사법 처리에 의존해 미온적으로 대처해 왔다. 납품대금 지급 지연 등 불공정한 하도급 거래 관행 등으로 중소 사업주가 어쩔 수 없이 월급을 제때 주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시장 전체적인 회피와 무책임에 대한 암묵적인 관용이 일한 대가를 제때 받는 가장 기초적인 고용질서를 무너지게 한 것이다.

더이상 체불로 인한 근로자의 고통이 지속되어서는 안 된다. 기초적인 고용질서가 바로 서지 못한 상태에선 사회안전망을 아무리 보강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

정부는 지난해 12월 ‘비정상의 정상화’ 과제를 선정하면서 임금체불 해소를 앞머리에 두었다. 발상을 전환해 사법 처리라는 ‘녹슨 칼’에만 의지하지 않기로 했다.

전체 임금체불 원인 중 52.0%가 일시적 경영 악화다. 정부는 일단 이 때문에 임금 지급에 어려움을 겪는 사업주에게 자금을 융자해줘 재직 근로자의 체불을 예방할 계획이다. 사업주가 지불능력이 없어 임금을 못 받는 근로자에 대한 지원도 대폭 강화하기로 했다. 현재는 도산 기업의 퇴직자만 지원하고 있어 효과가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체불을 예방하고 기업의 정상화도 돕기 위해 선제적으로 대처하려는 취지다. 또 중소기업에서 임금을 못 받고 퇴직한 근로자에게 정부가 일정 부분까지 지급을 보장하는 제도도 마련하고자 한다.

그러나 고의·상습적 체불 사업주에게는 더 엄격한 제재가 필요하다. 재산을 빼돌리거나, 임금 지급을 미루다가 도주하고, 심지어 상습적으로 체불한 뒤 ‘합의’라는 방법으로 처벌만 모면하고 끝내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 이런 사업주에게는 사법 처리 외에 강력한 경제적 제재를 가해 ‘버티면 그만’이란 인식을 근절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아울러 연간 33만 건이 넘는 체불사건을 신속하고 효율적으로 처리하기 위해 행정 서비스도 개선할 것이다. 2월부터 지방관서에 ‘권리구제지원팀’을 신설해 민간 조정관들이 신속한 상담과 조정을 지원한다. 민간과의 협업을 통해 예방활동을 강화하는 한편 근로감독관들은 보다 복잡하고 악의적인 사건에 집중할 것이다.

방하남 고용노동부 장관
#임금체불#근로자#고용질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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