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이광표]숭례문과 한국사 교과서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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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광표 정책사회부장
이광표 정책사회부장
국보 1호 숭례문 부실 복원을 놓고 우리 사회가 소란스럽다.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둘러싸고 한바탕 홍역을 치렀다.

두 논란을 들여다보면 공통점이 꽤 많다. 우선, 숭례문 복원이 부실하고 교학사의 한국사 교과서 내용이 부실하다는 것이다. 지난해 5월 숭례문 복원공사가 마무리됐다. 하지만 불과 5개월 만에 80여 군데에서 단청(丹靑)이 벗겨지고 들뜨면서 부실복원 논란에 휩싸였다. 이에 그치지 않고 숭례문의 목재와 기와에도 문제가 있다는 주장이 제기되었다. 우리 소나무인 금강송 일부를 러시아산 소나무로 바꿔치기했다는 주장까지 나왔다. 급기야 감사원 감사와 경찰의 수사로 이어졌다. 그 와중에 문화재청의 의뢰로 숭례문 목재의 산지(産地)를 조사, 분석하던 목재연대 전문가가 며칠 전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감사와 수사 결과가 나와야 하겠지만 우리는 유능하고 희귀한 목재문화재 전문가 한 명을 잃어야 했다.

논란 끝에 교학사 한국사 교과서는 올해 채택률 0%로 마무리되었다. 검인정 교과서의 채택률 0%는 초유의 일이다. 교학사 교과서를 긍정적으로 보든, 비판적으로 보든 우리 사회의 수치이자 손실이 아닐 수 없다.

논란의 전개 과정도 비슷했다. 숭례문 부실복원 논란은 일부 문화재계 사람들과 일부 언론이 사안을 지나치게 확대, 과장시켰다. 문화재 보수 복원에 참가한 사람들을 범죄자 취급하는 듯했다. 우리나라 중요 건축문화재들이 당장이라도 무너질 것처럼 사실을 왜곡했다. 평소엔 문화재에 관심도 없는 사람들이 한마디씩 훈수를 하고 나섰다. 체계적이고 합리적인 논의가 불가능해졌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역사 교육 자체에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런 우리가 한국사 교과서가 이슈로 떠오르자 치열하게 논란을 벌였다. 논란은 이념 대립의 편 가르기 식으로 나아갔다. 그 와중에 폭력과 협박이 횡행하기도 했다.

이처럼 숭례문과 한국사 교과서 논란은 지나치게 감정적이었다. 비논리적, 비합리적이었다는 말이다. 전문성과 깊이가 있는 논란이라기보다는 객들이 나서서 논란을 끌고 다녔다. 본질은 사라지고 껍데기를 놓고 논란이 벌어진 것이다.

본질이 사라진 논란. 이것이 두 사안의 핵심적인 공통점이다. 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근본에 대해 질문을 하지 않으려는 우리 사회의 관행 탓이다.

숭례문 부실 복원의 근본 원인은 조급함 같은 것이었다. 단청을 전통 방식으로 한다면서도 이에 대한 연구와 실험이 부족했다. 서둘렀기 때문이다. 준공이 늦어지더라도 좀더 철저해야 한다는 장인정신이 부족했다. 2010년 8월 복원한 광화문 현판이 석 달도 되지 않아 금이 간 것도 소나무를 제대로 말리지 않은 채 서둘렀던 탓이다.

한국사 교과서도 그렇다. 2009년 이후 교육과정 수시개편 체제로 바뀌면서 교과서를 1, 2년 만에 새로 만드는 일이 빈번해졌다. 이런 상황에서 교과서 부실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한국사에서 분리해 근현대사 과목을 만들더니 다시 통합하고 이에 따라 교과서도 널을 뛰었다. 상식적으로 한국사 교과서라면 최소 10년은 사용해야 하는 것 아닌가. 교과서에 오류가 있으면 한 학기, 두 학기 거치면서 차분하게 바로잡아 가면 된다. 그렇게 해서 좋은 교과서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문화재와 한국사는 수천 년, 수만 년의 흔적을 담고 있다. 문화재를 복원하고 한국사 교과서를 쓰면서 경박하고 조급하게 서두른다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이에 대한 반성과 논의가 없다면 문화재 부실 복원과 교과서 부실 논란은 어김없이 재연될 것이다.

이광표 정책사회부장 kplee@donga.com
#국보 1호#숭례문#부실 복원#한국사 교과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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