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방형남]120년 전 갑오년과는 다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4년 1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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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형남 논설위원
방형남 논설위원
갑오년이라는 연대기적 공통점을 근거로 2014년 새해를 120년 전인 1894년과 비교하는 시각이 유행한다. 동북아시아를 둘러싼 강대국의 각축을 1914년 제1차 세계대전 발발 당시 국제정세와 비슷하게 보는 관점도 있다. 둘 다 요약하면 한국이 주변 강대국 틈새에서 고래 싸움에 등 터지는 새우 신세가 될 수 있다는 우려다.

100년 전이든 120년 전이든 우리의 과거는 참담했다. 그렇지만 오늘의 한국은 강대국의 먹잇감으로 전락했던 시절의 약소국이 아니다. 분수를 모르는 자만심도 문제지만 지나친 비관론도 국가에는 독(毒)이다. 얼마 전까지 ‘20-50클럽(1인당 국민소득 2만 달러, 인구 5000만 명) 가입’ ‘원조 받는 나라에서 주는 나라로 발전’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개최’ 등 자신감이 넘치던 시절도 있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국가 운명을 걱정하는 사람이 느는 현상을 세태의 가벼움 탓으로 여길 수만은 없다.

객관적인 판단을 위해 국제 환경을 뒤집어 보았으면 한다. 꿈틀대는 동아시아가 주변강국에는 유리하고 한국에만 불리하다면 두려워해야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우리만 도전을 받는 게 아니다.

중국은 세계 2위의 강대국이 됐지만 망국병 수준인 부패, 일본과의 갈등, 미국과의 경쟁 등 고민 또한 크다. 중국은 특히 미국의 아시아 중시정책으로 냉전시대 소련을 겨냥한 봉쇄정책(containment policy)의 대상이 될 것이라는 걱정을 하고 있다. 일본이 실효(實效)지배하고 있는 센카쿠 열도(중국명 댜오위다오)에 대해서도 강경 대응을 하고 있으나 점점 강해지는 미일동맹 체제가 부담스럽다. 혈맹인 북한마저 중국에 고분고분하지 않는 골칫거리로 변했다.

일본은 아베 신조 총리 집권 이후 공세적 외교를 펴고 있으나 국제사회의 외톨이가 돼가고 있다. 한국과 중국으로부터 철저히 외면당해 동아시아에는 일본의 친구가 없다. 아베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 이후 전 세계의 손가락질을 받는 신세가 됐다.

북한 김정은은 고모부 장성택을 처형하는 체제 자해행위를 했다. 그렇지 않아도 할아버지 김일성과 아버지 김정일에 비해 훨씬 권력기반이 약한 그가 마음 놓고 의지할 수 있는 보호세력을 찾을 수 있을까. 북한 권력층의 불안도 한반도의 안정을 흔드는 요인이 될 수 있다.

세계 최강 미국은 경제적 쇠퇴에 발목이 잡혀 있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외교에서 C학점을 받을 정도로 국제적 영향력이 줄어들었고 국내 지지도 40%대로 추락했다.

주변국들과 비교하면 한국의 처지가 오히려 나을 수도 있다. 한국 경제는 지난해 무역 1조 달러 달성, 수출과 무역흑자 규모 사상 최대 등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했다. 세계 최대인 중국 시장에서는 일본을 제치고 대중(對中) 수출 1위 국가로 올라섰다. 박근혜 대통령은 “이제는 제대로 일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고 집권 2년 차를 시작할 것이다.

국가 경영은 대통령과 정부가 하지만 국민도 할일이 많다. 관중도 선수와 함께 뛴다. 특히 국제적 도전에 맞서 국가의 운명을 개척하는 일에는 국민이 힘을 보태야 한다. 감시하고 비판하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얼마나 응원하고 격려하느냐에 따라 선수들의 성적표가 달라진다.

미국 프로야구 메이저리그의 자랑스러운 한국인 추신수 선수가 며칠 전 기자회견에서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이기는 팀은 ‘이겨야 한다’고 생각하지만 지는 팀은 ‘이기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국가에도 역경을 극복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새로운 각오로 새 출발을 하는 새해, 국민과 정부, 대통령이 한마음이 되었으면 한다. 2014년 대한민국, 힘냅시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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