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천광암]미세먼지, 담화증장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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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광암 경제부장
천광암 경제부장
“중국의 미세먼지를 정화하는 유일한 수단이 뭔 줄 아세요?”

“15억 인구의 폐입니다.”

필자가 지난달 하순 중국 베이징(北京)을 방문했을 때 현지 가이드가 던졌던 농담이다. 중국의 급속한 공업화로 대기오염이 극심해지고 있는데, 방지대책은 전혀 없다는 뜻이었다.

우리나라는 중국발(發) 미세먼지의 반나절 영향권에 들어 있다. 중국의 대기가 나빠지는 속도를 보면, 지난주 겪었던 중국발 미세먼지 공습은 ‘맛보기 예고편’에 불과할 가능성이 높다. 한국 정부가 독자적으로 할 수 있는 대책은, 그제 발표된 대로 예보를 강화하는 정도가 고작일 것이다. 사실상 5000만 국민의 폐로 오염된 공기를 정화해야 하는 셈이다.

설상가상(雪上加霜). 미세먼지의 공습 뒤에는 또 하나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중국에서 대기오염이 심해진 원인으로는 난방 및 공업용 에너지 사용량의 급증과 자동차 수 증가 등이 꼽힌다. 이른바 ‘바오바(保八·연간 경제성장률을 8%로 유지하는 정책)’로 상징되는 중국의 고속성장이 근본 원인이다. 중국 정부가 환경문제는 전혀 고려하지 않은 채 오직 성장에만 ‘다걸기(올인)’해 온 결과 대기의 자정기능이 고장 나 버린 것이다.

비록 ‘바오바’는 폐기했다고 하더라도 중국 경제는 지난해 7.8% 성장에 이어 올해도 7%대 중반의 성장률을 기록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정부는 이후로도 7%대 성장률을 유지하려고 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고서는 15억 인구에 필요한 일자리를 제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렇게 하고 싶은 것’과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은 별개다. 미국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에서 종신교수를 지낸 바 있는 류징(劉勁) 청쿵상학원 부학장(재무학 전공)은 “중국의 환경오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성장률을 4∼5% 수준까지 떨어뜨려야 한다”고 단언한다.

만약 중국의 성장률이 반 토막 난다면, 수출의 4분의 1을 중국에 의존하고 있는 한국 경제는 어떤 영향을 받게 될까. 현대경제연구원에 따르면 중국의 성장률이 1%포인트 떨어지면 한국의 성장률이 0.4%포인트 하락한다고 한다. 단순계산으로 중국의 성장률이 8%에서 4%로 내려가면 한국의 성장률은 1.6%포인트 떨어지게 된다. 한국 경제가 2011년 2분기부터 2013년 1분기까지 8개 분기 연속 0%대 성장의 늪에서 헤맸던 점을 돌이켜보면, 1990년대 후반 외환위기 때나 겪었던 마이너스 성장의 쓴맛을 다시 보게 될지 모른다.

물론 중국의 성장률이 4% 선까지 추락한다고 보는 것은 다소 극단적이다. 그러나 중국 대기의 급속한 악화 속도로 볼 때 중국 경제에 대한 ‘감속(減速) 압력’은 일반적인 예상보다 훨씬 강할 것이라는 점만은 분명하다. 중국 공산당이 내년 경제정책운용 키워드로 ‘담화증장(淡化增長·성장을 약하게 한다는 뜻)’을 제시할 것이라는 중국 언론들의 보도는 이를 뒷받침하는 강력한 증거다.

중국 경제의 고성장을 위협하는 것은 환경문제만이 아니다. 빈부격차 확대나 부실채권 문제도 심각하다. 이로 인한 중국발 경제쇼크에 대비하기 위해서는 규제를 풀어 투자를 활성화하고 서비스업을 키워 일자리를 늘리는 방법으로 안전판을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도 칼자루를 쥔 우리 국회는 경제효과가 수십조 원에 이르는 법안을 깔고 앉은 채, 정치 게임에만 여념이 없다. 이를 지켜보는 국민들로선 울화통이 치밀 따름이다.

한방(韓方) 상식에 따르면, 울화는 심장에 부담을 준다고 한다. 중국발 미세먼지에 폐를 혹사시키고 여의도발 스트레스에 심장이 상하다 보면, 우리 국민의 심폐 건강이 어찌될지 걱정이다.

천광암 경제부장 iam@donga.com
#중국#미세먼지#대기오염#방지대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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