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인숙의 행복한 시읽기]<185>비밀정원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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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밀정원
―정용주(1962∼)

다래 덩굴처럼
산속으로 이어진 오솔길
죽어 쓰러진 나무들 스스로 껍질을 벗겨내고 있다
엉킨 덩굴에 매달려 쪼그라든 몇 개 산열매처럼
지워져가는 길의 가지 끝에서
돌무더기 쌓아놓은 흔적만 남아 있는
화전민들의 옛 집터
증거해야 할 아무 자랑도 없이
부서져 내리지 못하는 이끼 덮인 돌 위의 돌
언제부터 자란 오미자 덩굴이
쓸쓸한 흔적의 정원에 공중 그물을 엮었다
스웨터를 장식하는 구슬 같은
오미자 송이가 주렁주렁 열렸다
햇살의 정적을 빨아먹으며 몸을 붉혀가는 오미자 열매
스스로 제 고독을 완성시켜가고 있다


시인 정용주가 책 보따리와 CD 보따리, 쌀 한 자루를 짊어지고 치악산 깊은 산속으로 삶의 터전을 옮긴 것이 2003년이란다. 이 시가 실린 시집 ‘그렇게 될 것은 결국 그렇게 된다’에는 그 ‘몽유거처(夢遊去處)’에서의 10년 세월이 녹아들어 있다. 늘 쫓기듯 움직일 수밖에 없는 자본주의 쳇바퀴에서 벗어난 건 부럽지만,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자연 속에서 늘 지낸다는 건 얼마나 외로운 일일까. 이렇게 살기가 쉽지 않다. 도시에서의 생활은 외로운 순간을 주지도 않고, 또 우리 도시인은 외로운 순간을 두려워한다. 스스로 로빈슨 크루소가 된 그는 강한 사람이다. 강한 자만이 자연을 얻는다. 비밀정원도 있고, 고독이 여물어가는 삶을 사는 복 받은 사람! 우리는 어쩌다 한 번 이런 기회를 갖는다.

여가문화가 확산되면서 삼십대 사십대 남성들이 가족과 캠핑을 많이 했다. 그런데 언제부턴가 혼자 캠핑을 간단다. 여름뿐 아니라 가을 겨울에도 혼자 야영장에 가서 하루 이틀씩 지내다 온단다. 혼자 불을 지펴 밥을 해먹고, 랜턴을 켜고 책을 보거나 음악을 듣고, 혼자 걸으며 나무도 보고 하늘도 보고. 식구들이나 조직, 연인과 너무 붙어 있는 게 좋기만 한 게 아니다. 자연과 일대일로 대면하면서 원초적인 힘을 느끼고 고독을 맛보는 시간에 힐링도 되고 생기를 되찾으리라.

열매도 풀도 제 고독을 빨갛게 완성시키는 풍경이 고즈넉이 생생한 ‘비밀정원’. 서경시(敍景詩)가 이리 실할 수 있구나!

황인숙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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