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성원]‘국회 중심의 정치’를 이루려면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1월 2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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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성원 정치부장
박성원 정치부장
민주당 강기정 의원과 대통령경호실 파견 순경 사이에 국회 본관 앞 몸싸움 사건이 벌어진 18일 새누리당 관계자가 박준우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에게 연락했다. 국회로 와서 수습해 달라는 부탁이었다. 하지만 박 수석은 정중히 거절했다고 한다. 강 의원이 버스를 발로 차고, 항의하러 내린 순경에게 폭력을 행사했다는 논란이 불거진 일을 놓고 정무수석이 뭘 할 수 있겠느냐는 얘기였던 것으로 알려졌다.

법대로 처리해야 할 일을 정치적으로 떼를 쓰면 들어주던 관행은 원칙과 글로벌 스탠더드를 중시하는 박근혜 정부에선 통하지 않는다는 청와대의 인식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런 생각을 가진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 시정연설에서 정국을 마비시키고 있는 국가기관 대선개입 의혹 사건의 해법으로 ‘국회 중심 정치’라는 화두를 던졌다.

박 대통령은 “정치는 국회가, 국회의원들이 하는 것”이라면서 “최근 야당이 제기하고 있는 여러 문제를 포함해 국회에서 여야가 충분히 논의해 합의점을 찾는다면 존중하고 받아들일 것”이라고 했다. 국가정보원 사건 특위든 특검이든 기본적으로 국회가 의논해서 정할 사안이며, 여당과 야당이 논의하는 것이지, 청와대가 지침을 줄 일은 아니라는 뜻이다.

얼핏 이상적으로 들리는 대통령의 해법은 현실에선 전혀 먹혀들지 않고 있다. 왜 그럴까? 의원내각제 나라에서라면 박 대통령의 말처럼 여야가 논의를 통해 뭐라도 해법을 찾아냈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의 말이 떨어지고 나서야 “국회 특위는 수용하되 특검은 안 된다”는 ‘급조된’ 당론을 내놓은 새누리당 최고위원회의 자체가 대통령의 뜻을 확인하지 않고는 한 발자국도 움직이지 못하는 여당의 현주소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박 대통령이 국회 연설에서 “제1당인 새누리당이 전권을 갖고 지혜로운 해법을 찾아내줄 것으로 믿는다”고 덧붙였다면 어땠을까? 실질적인 권한을 여당에 위임하는 모습을 보여줬다면 야당 의원들이 “대통령이 국회에 공을 떠넘기는 식의 ‘유체이탈 화법’을 쓰고 있다”면서 서울광장으로, 광화문광장으로, 청와대 방향으로 몰려가는 일은 없었을지 모른다.

민주당 중진들이 실권 없는 새누리당 황우여 대표보다는 대통령의 의중을 업고 원내에 복귀한 것으로 알려진 서청원 고문과의 만남에 더 기대를 거는 듯한 모습은 현재의 어정쩡한 여당 구조상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이럴 바엔 차라리 대통령이 직접 국회 연설 이후 새누리당 지도부를 불러 ‘반드시 해법을 마련하라’는 지침을 줬다면 좋았을 것이라는 얘기도 정치권 일각에서 나오고 있다. 새누리당의 당헌 8조(당과 대통령의 관계)는 ‘대통령에 당선된 당원은 당의 정강 정책을 충실히 국정에 반영하고, 당은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적극 뒷받침하며 그 결과에 대해 대통령과 함께 국민에게 책임을 진다’고 돼 있다. 대통령과 여당 지도부가 먼저 머리를 맞대고 꽉 막힌 정국 타개책을 논의할 필요성이 제기되는 이유다.

범친노(친노무현) 세력이 다수인 민주당에서 입지가 넓지 않은 김한길 대표에게 여야 협상에 나올 명분을 주기 위해 야당이 주장하는 특검 수용이 어렵다면 특임검사든, 국정원 댓글사건과 별개의 추가 혐의에 대한 ‘별건 특검’이든 검토해볼 수도 있을 것이다.

‘국회 중심의 정치’가 대통령의 책임회피용 언급이라는 지적을 듣지 않으려면 의회주의 원리와 대통령 책임제의 조화로운 작동을 이뤄낼 환경 조성에 박 대통령이 적극 나서야 한다.

박성원 정치부장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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