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세영의 따뜻한 동행]나의 아파트 역사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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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보다 배꼽이 크다더니 요즘 부동산 사정이 딱 그런 것 같다.

일부 지역에서는 전세가가 매매가를 추월하고,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 소형아파트가 대형보다 비싸게 거래됐다고도 한다. 하필이면 베이비붐 세대에 속한 나의 부동산 역사(歷史)도 기구하다. 결혼 이후 집을 네 번 샀는데 맨 처음에 산, 가장 평수가 작은 아파트가 내 평생 가진 집 가운데 가장 비싼 집으로 둔갑했으니 말이다.

신혼 시절 물정 모르고 구입한 1980년대 초 도곡동 13평 아파트 가격은 830만 원이었다. 결혼비용을 몽땅 생략하고 대출을 받아서 일단 집부터 샀다. 그 후 조금 더 넓은 평수를 분양받을 때마다 살던 집을 팔고 거기에 돈을 보태느라고 대출금 규모도 커졌다. 그렇게 세월이 흐르는 동안 나의 신혼집은 재개발되어 요즘 내가 살고 있는 집값의 두 배가 되었다. 경제적 가치로만 따진다면 그 집에 가만히 눌러 산 것만 못하게 된 셈이다.

물론 전적으로 부동산에 무지한 내 탓이다. 그러나 집이란 우리 가족이 살기에 편리한 보금자리라고 생각했을 뿐, 그렇게 요지경인 줄을 몰랐다. 10여 년 전에 조금 더 넓고 새로 지은 아파트가 살기 편하다는 이유로 강남의 아파트를 덜컥 팔고 이사를 했다. 그랬더니 팔아버린 아파트는 무지무지 오르고 새로 산 집은 제자리라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한동안 바보가 된 기분이었다.

상실감이 없다고 하면 거짓일 것이다. 그러나 다시 생각해보니 이만하면 됐다는 생각이 든다. ‘사람에게는 얼마만큼의 땅이 필요한가’라는 톨스토이의 단편이 있다. 아침에 출발하여 해질녘까지 돌아오면 그만큼의 땅을 주겠다는 말에 더 넓은 땅을 차지하기 위해 더 멀리 돌아오느라 종일 숨차게 뛰다가 도착 직전 쓰러져 숨진 농부 파홈. 결국 그가 차지한 땅은 그의 몸을 묻을 한 평의 땅이었다.

내 집을 장만하고, 평수를 넓히기 위하여, 평생 헉헉거리며 살아온 베이비붐 세대. 내 집 한 채 있으면 노후가 보장되리라는 달콤한 속삭임에 죽어라고 뛰었다면 심장이 멈추기 전에 이쯤에서 생각을 바꾸자. 집값이 반 토막 났다고 일상의 행복까지 반 토막 난다면 두 배로 억울하다. ‘하우스 푸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낸 이상한 아파트 가격으로 맘 상하는 것에서 벗어나 이제는 다른 가치로 눈을 돌리면 좋겠다. 열심히 살았으니 이만하면 됐다!

윤세영 수필가
#전세#매매#부동산#집#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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