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北, 개성 개발구 만들려면 남북 합의부터 지켜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0월 21일 03시 00분


북한이 싱가포르 홍콩 등의 외국 기업과 합작해 개성에 첨단기술개발구를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북한이 경제 회생을 위해 외국 기술과 자본을 받아들이기로 정책을 바꿨다면 고무적인 변화다. 북한의 경제 문호 개방은 우리도 바라는 바다. 하지만 북한이 남북 합의를 어기고 개성공단 국제화를 위한 이행 절차를 거부하는 상황에서 외국과 합작 계획을 밝힌 것은 의도가 순수해 보이지 않는다. 북한이 개성공단을 북한 뜻대로 이끌어가기 위한 대남(對南) 압력용으로 개발구를 추진한다면 성공할 수 없다.

북한은 올해 4월 개성공단 가동을 일방적으로 중단한 전력이 있다. 북한은 남한의 123개 기업이 진출해 북측 근로자 5만3000여 명에게 일자리를 주는 거대한 직장을 하루아침에 폐쇄했다. 이로 인해 남한으로부터 신뢰를 상실했음은 물론이고 북한과 경제 교류에 관심을 갖고 있는 외국 기업들은 북한이 믿을 수 없는 상대라는 사실을 절감했다.

올해 9월 개성공단을 재가동한 뒤에도 북한의 행보는 믿음을 주지 못하고 있다. 북한은 이달 중 개성공단에서 개최하기로 남한과 약속한 외국 기업 대상 투자설명회를 무산시켰다. 외국 기업을 유치하기 위해서는 3통(통행 통신 통관) 개선이 시급한데도 북한은 아무런 이유를 밝히지 않고 3통 분과위원회 개최에 응하지 않았다. 기업의 자유로운 활동을 위한 최소한의 요건인 3통마저 보장하지 않는 북한에 어느 외국 기업이 관심을 보일지 의문이다.

국제사회의 북한 진출에 대한 무관심은 겨우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북한의 나진선봉지구가 잘 말해준다. 북한은 2년 전 황금평을 중국과 합작으로 개발하겠다고 대대적으로 선전했으나 별다른 진척이 없다. 김정일 생존 시절에 발표했던 개발 계획인 신의주 특구 사업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졌다.

북한이 외국 기업의 투자를 받으려면 개성공단에서 신뢰를 보여줘야 한다. 북한은 남한보다 외국 기업을 끌어들이는 것이 정치적으로 덜 부담스럽다고 판단했을지 모르지만 독자적인 공단 개발은 어림없는 일이다. 개성공단만 해도 남한이 보내는 전기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공업용수와 식수도 남한이 북한 저수지의 물을 정수해 공급한다. 북한이 해외 투자를 유치하려면 남한과의 약속부터 지켜 외국 기업에 합의 파기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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