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종교인 과세,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8월 1일 03시 00분


기획재정부는 8일 발표할 예정인 세법 개정안에서 ‘종교인 소득도 과세 대상’이라는 원칙을 천명할 방침이다. 이어 내년 1월 내놓을 세법 시행령 개정안에 구체적인 과세 방식을 반영하는 방안을 추진키로 했다. 종교인 과세는 1968년 당시 이낙선 국세청장이 필요성을 처음 거론했다가 종교계의 반대로 무산된 뒤 기회가 있을 때마다 거론됐던 해묵은 과제다. 현행 국내 세법에 ‘종교인에게는 세금을 물리지 않는다’는 조항은 없지만 관행적으로 비과세했다. 국회에서 법을 바꿀 필요도 없이 세법 시행령을 바꾸는 것만으로도 과세할 수 있어 정부의 의지와 종교계의 협조만 있다면 큰 어려움 없이 시행할 수 있다.

종교인 납세를 원칙적으로 찬성하는 움직임은 국내 종교계 내에서도 점차 확산되는 추세다. 천주교는 이미 1994년 주교회의 결의를 통해 전체 16개 교구 중 영세교구와 군종교구 등 4곳을 제외한 12개 교구에서 소득세를 원천징수하고 있다. 일부 개신교 교회와 사찰 등도 자진신고 방식으로 소득세를 내고 있다. 국내 불교 최대 종파인 조계종의 자승 총무원장은 올해 초 신년사를 통해 “적정한 과세에 대해 부정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신부 목사 스님 등 국내 성직자는 36만여 명으로 추정된다. 법령상 납세의무가 생기더라도 소득이 적은 상당수 종교인은 사실상 세금을 내지 않거나 극히 소액만 낼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도 종교인 과세를 통한 추가 세수(稅收) 규모가 연간 1000억 원 정도로 전체 세수 확대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소득이 있는 곳에 세금이 있다’는 과세 원칙을 예외 없이 적용한다는 점에서 종교인 과세는 미룰 수 없는 시대적 과제다.

종교계 일각에서는 과세 원칙에는 찬성하면서도 성직자의 수입을 근로소득으로 간주해 근로소득세를 물리는 데 대해서는 거부감을 나타낸다. 정부는 종교인의 소득, 재산수준, 업무 특성 등을 고려해 합리적이면서도 불필요한 마찰을 최소화하는 과세 방안을 마련할 필요가 있다. 과세와 관련된 ‘소득 분류’에서 근로소득이나 사업소득이 아니라 ‘기타 소득’ 같은 방식을 택한다면 실질적인 과세 효과는 동일하면서도 종교계의 반발을 줄일 수 있을 것이다. 종교계도 우리 헌법이 규정한 ‘모든 국민은 납세의 의무를 지닌다’는 국민 개세(皆稅)주의 원칙이 뿌리를 내릴 수 있도록 납세에 적극 동참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종교인 소득#비과세#근로소득세#소득 분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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