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찬식 칼럼]사직단과 종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7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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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왕조 ‘종묘사직’ 가운데 종묘는 세계유산 찬사받고 사직단은 역사성 훼손
조속한 복원으로 서울 도성 면모 되찾고 전통과 민족적 자존심 회복을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서울 사직공원 안에 있는 사직단을 복원하자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사직단 일대는 일제강점기인 1920년대 초 공원으로 바뀌면서 원형이 크게 훼손됐다. 현재 사직단과 정문(보물 제177호) 정도만 남아 있을 뿐 바로 옆에 도서관 파출소 주민센터 등이 들어서 있다.

문화유산보호 단체인 ‘예올’은 옛 사직단 경내에 들어서 있는 건물들을 다른 곳으로 옮긴 뒤 주변의 녹지와 연결해 문화 벨트를 만들자고 정부 당국에 요청하고 있다. 30년 넘게 농업 행정을 담당하다 최근 퇴직한 나승렬 전 농림축산식품부 국장은 “사직단은 한국 농업 역사에서 가장 중요한 문화유산으로 농민의 마음을 한데 묶을 수 있는 곳”이라며 복원 운동가로 변신했다.

사직단은 종묘와 비교된다. 조선이 채택한 유교 이념에 따르면 도읍지에 반드시 필요한 세 가지가 궁궐, 종묘, 사직단이다. 궁궐은 왕실의 생활문화 공간이고 종묘는 역대 왕들의 신위를 모신 곳이다. 사직단은 토지의 신 ‘사(社)’와 곡식의 신 ‘직(稷)’을 모신다. 하늘을 향한 제사를 올리는 곳이다. 이른바 ‘종묘사직’은 왕조의 권위를 튼튼히 뒷받침하는 정신적 지주에 해당한다.

조선 왕조가 무너진 뒤 종묘와 사직단의 운명은 엇갈렸다. 일제강점기 종묘는 그대로 보존됐다. 그러나 20, 30년 전만 해도 한국인들은 종묘의 가치에 무관심했다. 1995년 유네스코가 주관하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이후 외국의 찬사가 쏟아졌다. ‘동양의 파르테논’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종묘 정전(正殿·한가운데 중심을 이루는 건물)의 반복적으로 이어진 기둥들이 그리스의 파르테논 신전과 유사한 점을 내세우면서 종묘 건축의 아름다움을 강조한 것이다.

건축가 프랭크 게리는 종묘에 감탄하며 “한국인은 이런 건물을 갖고 있다는 것을 자랑스러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종묘는 1997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창덕궁과 함께 조선의 국가 역량과 문화 수준을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

반면 서울 도성에서 500년 넘게 종묘 창덕궁과 삼위일체를 이뤘던 사직단은 슬픈 처지에 몰렸다. 1921년 11월 29일자 동아일보는 ‘사직단 공원 문제’라는 제목으로 ‘경성부(서울시청)는 사직단을 헐고 공원으로 조성하기 위해 설계를 마쳤는데 한편에서 사직단을 헐지 말고 주변만 공원을 만들자는 공론이 있다’고 소개하고 있다. 이듬해인 1922년 10월 21일자 동아일보는 ‘사직단은 원형 보존’이라는 제목으로 ‘조선총독부가 고대 건물로서 유명한 역사를 지닌 사직단을 허무는 것이 좋지 않다는 의견을 받아들여 사직단은 전부 그대로 두기로 했다’고 전하고 있다. 사직공원을 만들면서 사직단을 허물려다가 반대에 부닥치자 원형을 남겨두긴 했으나 역사성은 훼손됐다.

사직단은 왕실보다는 백성을 위한 공간이었다. 임금은 새해가 시작되면 사직단으로 나가 풍년을 기원하는 기곡제를 올렸다. 큰 가뭄이 들었을 때는 기우제를 지냈다. 1725년 7월 영조는 가뭄이 계속되자 사직단에서 친히 기우제를 지내겠다며 신하들에게 교서를 내린다. “나라는 백성을 근본으로 삼고 백성은 먹는 것으로서 하늘을 삼는데 백성이 먹을 것이 없으면 어떻게 나라의 구실을 하겠는가. 팔도 백성의 곤궁하고 초췌함이 갈수록 심해지고 있다. 그런데도 붕당을 만들어 아부하는 풍습이 요즘보다 심할 때가 없었다. 이것이 누구의 허물이겠는가. 진실로 나의 허물이다. 생각이 여기에 미침에 잠자리에 들어도 잠을 잘 수 없다.”

일제강점기에 훼손된 서울 5대 궁궐을 복원하는 사업은 2030년을 완성 시점으로 잡고 장기 계획으로 추진되고 있다. 옛 서울 성곽을 복원하는 사업도 2014년을 완료 목표로 진행 중이다. 하지만 사직단 복원은 여러 차례 말만 나왔을 뿐 제대로 추진된 적이 없다. 경복궁을 중심으로 좌우에 위치한 서촌과 북촌은 전통을 체험할 수 있는 명소로 거듭나고 있다. 사직단은 서촌 바로 옆에 위치하고 있다. 사직단이 복원된다면 동쪽의 창경궁 종묘 창덕궁에서 시작해 북촌 경복궁 서촌을 거쳐 사직단까지 이어지는 전통 거리가 만들어진다. 600년 역사 도시 서울의 면모를 새롭게 할 수 있다. 농업국가 조선이 서민의 삶을 걱정하던 사직단의 상징성이 다시 살아나는 것도 의미 있는 일이다.

복원 운동을 펴고 있는 나승렬 씨는 사직단이 농업과 관련된 문화재인 만큼 앞쪽 거리를 전통 음식과 농산품을 판매하는 장소로 특화하자는 아이디어를 내놓았다. 외국과의 자유무역협정(FTA) 시대에 국내 농업의 중흥을 위한 거점으로 삼자는 얘기다. 사직단은 인왕산을 뒤로하고 있어 풍광이 뛰어나다. 복원이 이뤄진다면 여러 목적의 관광 자원으로 활용될 잠재력을 지니고 있다.

전통은 반드시 후대에 넘겨줘야 할 우리의 자산이다. 사직단 복원은 일제에 의해 무너진 서울의 전통과 함께 민족적 자존심을 되찾는 마지막 사업이 될 것이다.

홍찬식 수석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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