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차지완]검경(檢警) 갈등의 프레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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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지완 사회부 차장
차지완 사회부 차장
“김학의 아니네!”

3월 경찰이 제출한 동영상을 본 검사들의 반응은 이랬다. 이 동영상은 건설업자의 유력인사 성접대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에 대해 출국금지를 요청하면서 함께 제출했던 것이다. 흐릿한 화질이 빌미가 돼 출국금지 요청은 거절당했다. 이 소식을 들었을 때 성접대 의혹 사건이 검찰과 경찰의 갈등 프레임에 갇혀 흐지부지될 것이라고 예단했다. 지금까지 늘 그래 왔으니까.

검경 갈등은 잊을 만하면 등장하는 해묵은 레퍼토리다. 주로 경찰이 검찰 관계자를 수사할 때 나타난다. 경찰이 신청한 압수수색영장 또는 구속영장이 검찰 단계에서 거절당할 때 도드라진다. 경찰이 시작한 수사를 검찰이 가로챌 때에도 고조된다. 지난해 10억 원대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 기소된 김광준 서울고검 검사 사건 때도 그랬다.

경찰의 불만은 수사권 조정 문제와 맞물려 갈등의 프레임으로 확장된다. 어김없이 “이것 봐라, 이래서 수사권 독립이 필요한 것이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온다. 검찰은 무대응 전략으로 맞선다. 검경의 기(氣)싸움은 ‘밥그릇 싸움’으로 변질되고, 국민은 피곤해한다. 수사권 조정 문제는 수면 아래로 고개를 감춘다. 경찰은 갈등의 프레임에서 늘 패배자였다.

그러나 성접대 의혹 사건 수사는 기존의 검경 갈등 프레임에서 한참 벗어나 있다. 경찰 수사팀은 검찰과 불협화음을 내는 걸 최대한 자제하는 모양새를 취한다. 소리 소문 없이 김 전 차관에 대한 출국금지를 이끌어냈고, 피의자 신분으로 소환을 앞두고 있다.

고비는 많았다. 이 수사는 처음부터 과잉수사 강압수사 부실수사라는 비판에 직면했다. “제대로 수사하려면 체포영장이든 압수수색영장이든 신청해서 검찰의 수사 지휘를 받으라”는 소리가 공공연하게 나돌았다. 수사가 한창일 때 수사라인의 지휘부도 교체됐다. 경찰에는 “수사 결과 별것 없으면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는 협박성 경고가 날아들었다. 수사팀이 일일이 반응을 했다면 검경 갈등의 프레임에 갇혔을 텐데 이상할 정도로 묵묵부답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검찰이 초조해한다. 검찰에서 “이번 수사는 과거와 많이 다르다. 수사팀이 어떤 그림을 그리는지 도통 알 수가 없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경찰 수사팀은 어쩌면 검경 갈등의 프레임을 역이용해 수사를 현 단계까지 끌고 왔는지도 모른다.

성접대 의혹 사건의 결론이 어떻게 나든 경찰은 큰 교훈을 얻었다. 불만을 여과 없이 드러내며 목청을 높인다고 원하는 걸 얻는 게 아니란 것을. 스마트하지 않으면 검경 갈등의 프레임에 갇혀 필패한다는 점까지도. 검찰을 의식하지 않고 그저 나쁜 짓 한 사람을 처벌하는 경찰 본연의 임무만 챙기면 이런 열매는 저절로 따라온다. 그런 의미에서 성접대 의혹 사건 수사는 ‘케이스 스터디’감이다.

차지완 사회부 차장 cha@donga.com
#검찰#경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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