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황진영]복지 사각(死角)지대… 민원 사각지대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6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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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진영 경제부 기자
황진영 경제부 기자
정부세종청사에 있는 부처 취재를 위해 세종시에서 살게 된 기자에게 가장 인상적인 것은 세종시 주변의 잘 정비된 도로망이다. 다리를 놓고 터널을 뚫어 시원하게 뻗어 있는 4차로 도로를 달리다 보면 “대한민국이 선진국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사통팔달로 연결된 도로는 세종청사 공무원들의 가장 큰 걱정거리를 하나 덜어줬다. 청사 구내식당을 벗어나 대전이나 조치원, 공주로 가서 점심 식사를 해결할 수 있고, 저녁 때는 전주, 군산까지도 한 시간 남짓한 시간에 갈 수 있다.

다만 도로 사정이 좋은 건 세종시와 대전을 중심으로 남쪽으로 움직일 때로 국한된다. 충청권역을 벗어나 서울로 갈 때는 사정이 달라진다. 경부고속도로 천안∼안성, 오산∼기흥 구간을 막히지 않고 통과한 적이 거의 없다. 한 시간 넘게 가다 서다를 반복하다 보면 차가 거의 다니지 않는 세종시 주변 도로의 쾌적한 교통 환경이 절로 생각난다.

상습 정체 구간에는 도로가 증설되지 않고, 교통량이 별로 없는 곳에는 왕복 4차로 도로가 시원하게 뚫리는 게 한국 교통시스템의 불편한 진실. 이런 도로의 불균형이 ‘민원의 사각지대’로 인해 생겼다는 것은 정부세종청사를 출입하면서 알게 된 사실이다.

다리, 지하철역, 지방도로처럼 지역 밀착성이 높은 사회간접자본(SOC)은 수혜 대상이 명확한 만큼 해결의 열쇠를 쥔 사람도 명확하다. 지방자치단체장이나 지역구 국회의원들이다. 하지만 SOC 수혜 대상이 ‘광역화’되면 민원의 해결사 역할을 해야 될 사람이 불분명해진다. 경부고속도로 천안∼안성 구간이 막혀도 천안, 안성 주민들이 느끼는 불편은 크지 않다. 천안이나 안성 국회의원들은 지역 구민들이 큰 불편을 느끼지 않으니 굳이 길을 넓혀 달라고 나설 이유가 없다.

그 구간이 막혀서 불편을 겪는 사람들은 안성 이북의 수도권에서 천안 이남의 부산 대구 광주 등을 오가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경부고속도로 확장 공사는 부산이나 대구, 광주 지역 국회의원들이 오지랖 넓게 나설 사안은 아니다. 낙선을 각오하지 않는 한 지역구 민원을 제쳐 놓고 다른 지역에 있는 도로를 더 넓혀달라고 이야기하기는 쉽지 않다. 예산을 짜는 정부로서도 민원이 빗발치는 지역에 먼저 눈이 가는 게 인지상정이다. 아무도 챙기지 않는 사업에 예산을 편성할 여력도 없다.

박근혜 대통령은 대선 기간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며 복지 확대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정부가 지난달 31일 발표한 ‘공약가계부’의 특징은 박 대통령의 복지공약 이행에 필요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SOC 예산을 대폭 줄인 것이다.

지역 민원에 휘둘려서, 혹은 정치적인 이유로 편성된 SOC 예산을 대폭 줄인 것은 잘한 일이다. 하지만 복지 사각지대를 없애느라 민원 사각지대에 있는 SOC까지 그대로 둬서는 곤란하다. 불필요한 도로, 철도 건설 사업을 줄이는 것 못지않게 정부가 해야 할 일은 꼭 필요한 SOC를 제때 건설하는 일이다. ―세종시에서

황진영 경제부 기자 buddy@donga.com
#복지#민원#사각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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