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호사카 노부코]나이가 그렇게 중요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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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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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사카 노부코 주부
호사카 노부코 주부
한국에 시집온 지 벌써 12년. 처음 만난 한국인과 대화할 때, 외국인이라는 사실을 밝히지 않으면 상대방이 먼저 눈치채지 못할 정도로 한국말도 할 수 있게 됐다. 그리고 낯설고 불편했던 문화나 습관에도 많이 적응됐다. 하지만 아직도 가끔 신기하고 어색한 일이 있다. 호칭도 그중 하나다.

한국에서는 가족이나 친척 간의 호칭이 매우 복잡하면서 중요하다. 신혼 때 시부모님에게 “친척 간에 이름을 부르는 것은 못 배운 사람들이나 하는 짓이다”라는 말을 들어 호칭을 외우려고 애를 썼다. 시동생이 결혼했을 때 동서를 “너”라고 불러 시어머니에게 주의를 받은 적도 있다. 나보다 나이가 어리니 ‘너’라고 불러도 괜찮은 줄 알았다. 하지만 나이는 어려도 같은 집안의 며느리이니 ‘자네’ 아니면 ‘동서’라고 불러야 한다는 것이었다. 잘 몰라서 한 일이라고 하지만 동서가 기분이 나빴을 것 같아 많이 미안했다.

한국 시집와 친척 호칭에 곤혹

호칭은 어른들에게만 중요한 게 아니다. 남편의 막내 사촌 동생은 열세 살이다. 두 살밖에 차이가 안 나지만 열한 살인 큰딸에게는 ‘고모’다. 일본에서는 이런 경우 그냥 이름으로 부르거나 언니라고 불러도 괜찮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럴 수 없다. 딸은 실수로 ‘언니’라고 부를 뻔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만나면 늘 즐겁게 같이 놀 수 있는 고모는 딸의 마음속에서는 ‘고모’보다 ‘언니’에 가까운 존재다.

하지만 어린 고모는 조금 다른 마음인 것 같다. 조카들과 즐겁게 놀면서도 식사할 때는 따로 먹는다. 어린 마음에도 필요한 선은 확실히 그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런 모습이 내게는 신기하게만 느껴진다.

호칭은 단순히 상대방을 특정한 이름으로 부르는 것에 그치지 않는다. 호칭으로 자신과 상대의 수직적인 관계를 정리하게 된다. 한국 사람은 대체로 수평적인 관계보다 수직적인 관계에 더 익숙하고 선호하는 것 같다.

한편 호칭과 떼어 생각할 수 없는 것이 ‘나이’다. 상대방이 자신보다 나이가 많은지 어린지에 따라 호칭이 달라지고 관계가 정리된다. 그리고 이것은 아이들에게도 무시할 수 없는 일인 것 같다.

큰딸은 2월생인데 일곱 살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5학년이 된 지금 친구들은 열두 살이지만 딸은 열한 살이다. 하지만 학교에서는 딸은 열두 살이라고 말한다. 나이가 한 살이라도 어리면 친구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든 어리든 그냥 서로 이름을 부르는 일본 같으면 신경 안 써도 되는 일이지만 한국에서는 그렇지 못하다.

이처럼 나이에 대한 개념은 아주 어릴 때부터 조금씩 심어지는 것 같다. 작은딸이 어린이집 친구들과 놀이터에서 같이 놀고 있을 때 가장 인기 있는 그네 앞에서 차례를 기다리다 벌어진 일이다. 모두 다음 차례가 자신이라고 주장하면서 말다툼이 일어났다. 한 아이가 “우리 언니는 3학년이야”라고 하자 옆에 있던 아이가 “우리 형은 5학년이야”, 다른 아이는 “우리 오빠는 7학년이거든!”, 또 다른 아이는 “우리 언니는 10학년이야!”라고 주장했다.

어릴적부터 나이 서열 ‘씁쓸’

그 광경을 보고 나는 말이 안 되는 아이들의 주장에 처음에는 막 웃음이 났다. 그러나 형제의 나이까지 끌어들이면서 친구들을 이기고 싶어 하는 아이들 심리를 생각하니 조금 씁쓸했다. 대학 입시전쟁이 심한 한국에서는 아이들은 친구이자 경쟁자다. 그 경쟁심의 싹이 어릴 때부터 자신도 모르게 돋아나고, 나이라는 수직적인 위계가 거기에 이용되는 것 같았다. 이는 비단 아이들의 문화뿐 아니라 한국사회의 다양한 집단에서도 간혹 마주하게 된다.

물론 어떤 사회에서든 경쟁심이 없으면 더이상 발전할 수가 없다. 그러나 그 바탕에 수직적인 위계 대신 서로가 존중하고 배려하는 마음을 갖춘다면 더 좋은 결과를 낳을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호사카 노부코 주부
#나이#호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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