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하종대]정직은 국가경쟁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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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15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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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종대 국제부장
하종대 국제부장
“나, 이 벌점 받으면 운전면허 취소되는데 당신이 대신 받으면 안 돼?”

“그러지 뭐. 난 그거 받아도 면허 취소는 안 되니까.”

영국의 촉망받는 중견 정치인이자 차기 영국 지도자로 꼽혀온 크리스 휸 하원의원(58). 10년 전 그는 과속으로 벌점이 초과돼 면허정지 위기에 처하자 아내와 상의한 뒤 벌점을 떠넘겼다.

하지만 7년 뒤 남편의 불륜으로 파경을 맞은 부인 비키 프라이스 씨(60)는 이혼한 뒤 이를 폭로했다. 휸 의원은 도의적 책임을 지고 장관직까지 그만뒀지만 영국 검찰은 법적 책임을 추궁했다. 그는 ‘사법정의 교란’ 혐의로 기소돼 법원에서 징역 8개월을 선고받았다.

재판부는 “벌점을 타인에게 떠넘기는 것은 사법정의를 위협하는 중대한 범죄행위”라며 실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사소한’ 부정(不正)이라도 얼마나 가혹하게 처벌하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다.

중국에서는 집에서 전기를 쓰려 해도 사전에 돈을 내고 전기카드를 사야 한다. 이렇다 보니 미리 전기카드를 사서 완전히 떨어지기 전에 재충전해야 한다. 카드 재충전을 게을리했다가 밤늦게 전기가 나가면 낭패다. 형광등이나 TV를 켤 수 없음은 물론이고 재충전 시간이 늦어지면 냉장고의 음식이 모두 상할 수도 있다. 밤이나 주말엔 전기카드 파는 곳을 찾기도 어렵다. 국민을 괴롭히고 불편하게 만드는 제도지만 중국 정부는 이를 바꾸지 않는다. 사용량에 따라 매달 전기료를 납부하는 사후 정산 방식으로 바꿨다가는 전기료를 떼먹고 도주하는 사람이 속출할까봐 두려워서다. 부정직(不正直)과 불신이 낳은 대표적인 비능률이다.

정직은 그 사회를 판단하는 핵심 요소다. 2007년 일본에 갔을 때 도시 농촌 할 것 없이 거리가 너무 깨끗한 데 깜짝 놀랐다. 허름한 골목에 들어가도 어디 한 곳 몰래 버린 쓰레기가 없었다. 비슷한 시기 중국에 갔을 때 차를 몰며 쓰레기를 밖으로 던지는 택시운전사를 보고 깜짝 놀랐다. “쓰레기를 그렇게 밖에 던져도 되느냐”고 물었더니 “메이스(沒事·괜찮다는 뜻)”라는 대답이 곧바로 돌아왔다. 선진국과 선진국이 아닌 나라의 차이는 여기에 있다.

한국에서는 고위 공직자를 임명할 때마다 후보자의 별의별 비리와 비행이 쏟아져 나온다. 이명박 정부 시절 오죽하면 위장 전입, 부동산 투기, 병역 기피, 세금 탈루, 표절 등 5가지가 ‘고위 공직을 맡기 위한 5대 필수조건’이라는 말까지 나왔겠는가.

이는 박근혜 정부 들어서도 별반 차이가 없는 듯하다. 남의 논문을 거의 베끼다시피 한 허태열 대통령비서실장부터 전국을 무대로 부동산 투기를 한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에 이르기까지 참으로 부끄럽기 그지없다. 더욱 큰 문제는 우리 사회가 이런 부정과 비리에 대해 여전히 눈을 감거나 심지어 ‘관용’을 베풀자는 목소리까지 나온다는 데 있다.

1인당 국내총생산(GDP)이 4만∼5만 달러인 선진국은 거저 달성되는 게 아니다. 정직하고 양심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충분한 혜택을 주고 부정과 비리를 저지른 사람에게는 가혹하리만치 강력한 처벌이 뒤따라야 한다.

나라의 세금은 잘 떼먹는 사람이 유능하고, 국가의 복지 혜택은 온갖 요술을 부려서라도 타먹어야 능력 있는 사람으로 간주되는 사회여서는 절대 안 된다. 지하철은 무임승차만 해도 30배의 요금을 물리고 거액의 뇌물을 받은 사람에게는 겨우 2∼5배만 벌금을 물려서도 안 된다.

정직은 훌륭한 사람만이 갖춰야 할 성품이 아니다. 모든 국민이 갖춰야 할 도덕적 기준이다. 나아가 사회 및 국가의 경쟁력의 원천이다. 미국의 유명한 정치철학자인 프랜시스 후쿠야마는 정직을 바탕으로 한 사회 구성원 간의 신뢰와 협력관계를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이라고 명명한 뒤 “우리 사회의 미래를 좌우하는 제3의 자본”이라고 설파했다.

하종대 국제부장 orionha@donga.com
#정직#국가경쟁력#사회적 자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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