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염재호]미래창조과학부의 미래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3월 5일 03시 00분


코멘트
염재호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염재호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왜 참신한 정책은 잘 집행되지 않는가. 새 정부가 출범하면 늘 새롭고 창의적인 정책을 제시하지만 이런 참신한 정책들이 원래 의도대로 추진되지 않는 경우가 많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과학기술의 중요성을 강조해 과학기술부총리제를 신설하고 혁신본부도 만들어 연구개발(R&D) 예산을 총괄하게 했다. 하지만 정책 집행 과정에서 효과가 없었다는 판단에 따라 이명박 정부는 이를 폐지하고 과학기술부를 교육부에 통폐합시켰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지식경제부를 만들어 우리 경제시스템을 지식산업 중심으로 재편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을 세웠다. 외국에서도 우리나라가 산업을 지식경제 중심으로 재편한다는 아이디어에 매우 큰 관심을 보였다. 이를 위해 지경부 안에 국가R&D전략기획단을 만들어 기존의 관료 중심 프로젝트형 R&D 기획을 전문가 중심으로 바꾸고 국가의 전략적 성장목표도 세웠다. 하지만 이를 적극적으로 추진하던 장관이 물러나자 국가R&D전략기획단 조직 자체가 흐지부지되고, 결국 박근혜 정부는 산업통상자원부로 다시 이름을 바꿔버렸다.

1970년대 초반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의 행정학자 윌답스키와 프레스먼은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집행이 잘 안 되면 소용이 없는데 왜 좋은 정책은 잘 집행되지 않는지에 주목했다. 그래서 오클랜드 프로젝트의 시행착오를 통해 궁금증을 풀어보려고 시도했다.

샌프란시스코 옆의 오클랜드라는 도시는 흑인 저소득층이 많고 실업률도 높아 이를 해결하는 게 급선무였다. 연방정부의 오클랜드 지역경제개발청장은 공공취로사업을 통한 시의 변화를 꾀했다. 본인이 주도하고 시장, 시의회, 노동운동가, 사회단체 지도자, 종교 지도자들까지 나서서 오클랜드 항구에 항만시설을 건설하는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오클랜드 시장도 적극적이었다. 시장은 어차피 공공시설을 만드는데 연방정부 재정으로 도시 저소득층에 취업 기회를 주면 도시의 슬럼화도 막고 실업률도 낮춰 도시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했다. 일석이조의 좋은 정책으로 여겼던 것이다. 그는 건설업자들과 주변의 해군기지 사령관, 시정부의 관료들을 설득했고 오클랜드 프로젝트는 드디어 출범했다. 하지만 결과는 참담했다. 총 2300만 달러를 들여 일자리 2200개를 만들겠다는 원대한 계획은 프로젝트 추진 3년 만에 고작 연방정부로부터 100만 달러를 투자받고, 일자리 43개를 만드는 데 그쳤다.

윌답스키와 프레스먼은 아무리 좋은 정책이라도 정책 결정 과정에 너무 많은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면 정책 결정 포인트가 분산돼 결국 집행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결론을 내렸다. 특히 이 사업을 주도했던 오클랜드 지역경제개발청의 폴리 청장이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가자 사업은 전혀 진척이 안 됐다. 오클랜드 시의 행정 관료들도 냉담했다. 다른 사업을 통해서도 할 수 있는 것을 굳이 흑인 실업자들을 고용하려 한다는 생각에 찬성하지 않았다. 결국 아무리 좋은 의도의 정책이라도 정책 결정만 하고 그냥 내버려두면 관료조직 내에서 집행이 잘 이뤄지지 않는다는 걸 이 사례는 보여주고 있다. 더구나 많은 사람들이 참여하는 정책의 경우는 더더욱 목적을 이루기 어렵다.

미래창조과학부(미래부)는 우리 사회시스템을 미래지향적으로 재편해 보겠다는 의도에서 만든 박근혜 정부의 대표 조직이다. 과학기술과 방송통신을 융합해 새 시장과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 우리 사회가 당면한 경제 문제를 풀어보겠다는 계획이 탄생 배경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미래부를 통해 창조경제의 기반을 구축함으로써 우리 경제를 새롭게 도약시키겠다는 생각에서 미국에서 성공한 벤처기업가인 교포 김종훈 씨를 장관으로 내정하는 파격적인 시도까지 했다. 21세기 사회시스템의 대변환기에 기존의 시스템만 갖고는 쉽게 풀 수 없는 청년실업, 중소기업 육성, 내수시장 확대, 수출경쟁력 강화 등 다양한 문제를 미래부를 통해 해결하려는 강한 의지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방송진흥 핵심 기능의 이관을 둘러싸고 여야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아 정부조직개편안 처리가 난항을 겪고 결국에는 김 후보자가 사퇴하는 사태까지 맞게 됐다.

정책 결정이 이처럼 어려운데 집행은 얼마나 어려울까. 특히 윌답스키와 프레스먼이 지적한 것처럼 다양한 이해관계자가 참여하는 정책 결정은 집행이 쉽지 않다. 미래부처럼 여러 부처의 기능을 넘겨받아 만든 조직은 매우 강력한 리더십으로 일을 추진하지 않으면 의도한 정책성과를 내기 어렵다. 더욱이 미래부의 기능은 예전에 시도한 적이 없는, 미래사회를 위한 새로운 행정 기능이다. 따라서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종합적인 기획 능력에다 우리 사회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키기 위한 시스템 디자인이 필요하다. 관료조직의 수동적인 행정문화와 제도적 관행으로는 이런 변화를 기대하기 어렵고 기존에 각 부처에서 해 왔던 다양한 기능을 단순히 한데 모은 것에 불과할 수도 있다. 그렇게 되면 소득은 없다. 따라서 미래부가 성공하려면 21세기에 맞는 전혀 새로운 모형의 정부부처를 창조해낸다는 인식이 필요하다. 새 술을 새 부대에 담는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염재호 객원논설위원 고려대 행정학과 교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