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주향의 달콤쌉싸름한 철학]갠지스 강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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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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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인도에 갔을 때 구걸하는 꼬마들이 많은 데 놀랐습니다. 인도의 그 풍경은 여전하네요. 이들은 성장하지도 않은 채 그때처럼 1달러를 구걸하러 모여듭니다.

한쪽에서는 목욕을 하고, 다른 쪽에서는 강의 신에게 예배를 드리고, 또 다른 쪽에서는 죽은 자를 화장하는 곳. 갠지스 강가는 여전히 시끄러운데, 왜 나는 여기를 또 찾은 걸까요. 무엇에 매료돼 1달러만 달라고 쫓아다니는 저 많은 아이들을 모른 척 외면하며 정신 놓치기 딱 좋은 이 소란한 곳을 걷고 있는 걸까요. 나는 확신합니다. 만약 이곳에 한국의 기독교가 들어온다면 구걸은 사라질 거라고. 구걸하는 에너지로 그들은 성실하게 돈을 벌 것이고, 신상들을 파괴할 것입니다. 그리고 바라나시는 매력을 잃을 것입니다.

7년 전 처음 갠지스 강가 바라나시에 왔을 때가 생각나네요. 나는 두 밤을 꼬박 새웠습니다. 낯선 이국의 밤이 무서워서 잠들지 못했던 겁니다. 의미도 모르는 만트라를 읊조리는 사제들이, 마차에 신상을 모셔 놓고는 황홀경에 빠진 표정으로 마차를 따라다니는 젊은이들이, 갠지스 강가에서 죽겠다고 거적을 쓰고 죽음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활활 타오르는 화장터의 불길이, 학교는 가지 않고 구걸하거나 장사하는 아이들이, 길거리에 누워서 어른 행세를 하는 소들이 모두 이상하고 낯설기만 했습니다. 그동안 봤던 인도에 관한 서적은 어떤 것도 도움이 되지 않았습니다. 내게 바라나시는 세상의 신들이 다 모여 있는 무서운 도시였습니다.

돌아와서 한참 후에야 나는 내가 거기서 잠들지 못한 이유를 알았습니다. 거기엔 바로 내가 두려워하는 것들이 있었습니다. 내가 두려워하는지도 몰랐던 것. 바라나시가 겨우 알게 해준 것. 그것은 바로 무지고, 가난이고, 신명이고, 죽음이었습니다.

아이들이 학교 다니지 않는 세상을 보지 못했던 나는 내가 무지와 가난을 두려워하고 있다고는 생각하지 못하고, 구걸하거나 꽃을 파는 아이들이 불쌍하다고만 생각해서 그 아이들의 밝고 환한 표정을 놓친 것입니다. 이성(理性)에 기대 사는 것이 익숙한 나는 내가 신명을 모른다는 사실은 인정하지 못하고, 거리의 신명을 우상 숭배쯤으로 여겼던 것입니다. 전형적인 ‘투사(投射)’인 거지요. 자기 문제를 남에게 전가하는 것 말입니다.

알고 나니 투사를 그치게 되고, 투사를 그치니 그들이 보입니다. 인도에 가시면 1달러만 달라고 구걸하는 소년의 얼굴을 보십시오.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황폐하지도 않습니다. 외면했기 때문에 보지 못했을 수도 있지만 언뜻 본 것을 상기해 보십시오. 얼굴은 밝고 동작엔 활기가 있습니다. 더 나아가서 신전 앞에서 꽃을 파는 소녀의 얼굴을 상기해 보십시오. 들판에 핀 꽃을 꺾어 놓고 1달러라고 파는 야무진 소녀의 얼굴은 종종 꽃처럼 빛납니다. 그러고 나면 생각이 달라집니다. 그들에게 그것은 ‘부끄러워 감춰야 하는 행위인 것이 아니라 그저 사는 일이겠구나’ 하고요. 구걸, 가난, 더러운 것, 신명이 부끄럽지 않는 나라. 그 힘으로 죽음까지도 긍정하는 나라. 그것이 인도입니다.

이제 나는 인도의 힘을 향해 무장해제합니다. 그리하여 가난이 두렵지 않은 세상, 신명이 삶의 에너지일 수 있는 세상, 산 자와 죽은 자가 돌고 도는 세상, 인간과 동물이 차별 없는 세상을 축복합니다. 갠지스 강가에서 수천 년을 내려온, 강의 신에게 드리는 예배를 바라보며 나도 내 식으로 기도를 보탭니다. 인도의 미래가 1인당 국내총생산(GDP) 2만 달러의 대한민국이 아니기를. 인도는 끝까지 인도이기를.

이주향 수원대 교수·철학
#인도#갠지스 강가#바라나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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