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태규의 ‘직필직론’]똑 똑… 국민에게 문 좀 열어주세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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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국민들이 행복하려면 정부가 투명하고 열려있어야 한다.” 북유럽의 스웨덴과 핀란드가 247년 전부터 깨닫고 실천해 온 교훈이다.

스웨덴과 핀란드는 전 세계적으로 부러움의 대상이며 연구 대상이기도 하다. 2012년 한 해에 세계의 언론과 연구기관, 민간단체 등이 평가한 두 나라의 실력과 형편은 경이롭기까지 하다. 미국 시사 잡지 ‘뉴스위크’는 교육, 보건, 삶의 질, 경제의 역동성, 정치 환경 등을 고루 따져 핀란드를 세계 최고국가로 꼽았다. 스웨덴은 3위였다. ‘평화를 위한 기금’이 선정한 가장 실패한 국가 순위에서 177개국 가운데 핀란드는 177위, 스웨덴은 176위. 거꾸로 말해 가장 성공한 나라 1, 2위였다. ‘국제투명성기구’의 부패 지수에서 핀란드 1위, 스웨덴 4위. ‘레가텀 연구소’가 평가한 행복한 삶을 나타내는 번영 지수에서 스웨덴 2위, 핀란드 7위. ‘월드경제포럼’의 글로벌 경쟁력 평가에서 핀란드 3위, 스웨덴 4위. ‘프리덤 하우스’의 언론자유 순위에서 공동 1위. 이 정도면 이들 나라 국민은 투명하고 열린 정부를 가진,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이라 할 만하다.

위의 각종 평가에서 스웨덴이나 핀란드가 1위가 아닌 자리는 같은 스칸디나비아 나라인 노르웨이나 덴마크가 차지하고 있다. 겨울이면 영하 30도까지 떨어지는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혹독한 자연 환경 속에서 이들은 어떻게 우뚝 솟은 나라를 이룩할 수 있었을까. 이들이 작은 나라일 뿐 아니라 춥고, 어두운 우울한 환경 속에 있기 때문이라는 재미있는 분석도 있다. 추위를 막기 위해 가족들이 가능한 한 서로 붙어 지내기 때문에 삶의 질이 몹시 높아진다. 너무 추워 거리에 나가 싸울 수 없기 때문에 통치가 단순하고 공정해서 정치 환경이 좋다. 최대한의 운동과 최소한의 열량소비로 동상과 싸우는 법을 배운 사람에게는 경제의 역동성이 높기 마련이라 잘 산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스웨덴과 핀란드가 투명한 정부, 열린 정부를 만들기 위한 법을 세계에서 가장 먼저 제정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두 나라는 특수한 역사 관계를 갖고 있다. 스웨덴은 600여 년 동안 핀란드를 지배했다. 그런 스웨덴과 식민지 핀란드 의회는 1766년 ‘언론자유와 공공 기록에 대한 접근권 법’을 제정했다. 이 법은 정부가 하는 일을 백성들에게 소상하게 공개하고, 정부가 잘못하는 것을 언론이 마음껏 비판할 수 있다면 과학과 유용한 기술의 발전과 보급이 촉진될 뿐 아니라 백성들이 향상된 지식을 얻으며 정부에 대해 고마워하게 될 것이라고 선언했다.

나아가 “이러한 자유는 도덕을 높이며 법에 대한 복종을 가져오는 최고의 방법으로 간주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력을 장악하고 백성을 억압하기 위해 비밀을 기본 무기로 활용하는 관료들에 대한 고삐를 죄기 위해 의회는 정부의 공문서를 공개토록 하고 언론에 대한 검열을 폐지했다. 세계 어느 나라도 상상조차 하기 어려웠던 혁신의 조치였다. 무엇보다 과학 기술의 발전이 투명하고 열린 정부와 언론자유에서 비롯된다는 발상을 247년 전에 했다니 놀라지 않을 수 없다.

1766년은 조선의 영조 43년이다. 사도세자가 뒤주 속에서 8일간을 버티다 죽은 지 4년 뒤이다. 영조 때는 물론이고 조선시대를 관통하여 왕과 신료, 사림(士林)들 사이에는 치열한 논쟁이 있었다. 사림들은 조정의 언관을 맡아 왕과 집권 세력의 잘못을 공격했다. 관직을 맡지 않은 선비들은 상소 등을 통해 소신을 펼쳤다. 언론자유가 만개했다. 그러나 그 자유는 그들만의 자유였다. 사도세자의 죽음을 둘러싼 치열한 권력 암투를 백성들이 짐작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왕과 신하들의 논쟁은 물론이고 조정이 하는 일을 백성들에게 알린다는 것은 가당치도 않은 일이었을 것이다. 왕과 조정이 양반들에게는 열려있었을지 모르나 백성들에게는 그야말로 꽉꽉 막힌 구중궁궐이었을 뿐이다.

당시 스웨덴은 절대군주 시대를 지나 의회가 통치하는 가난한 후진국이었다. 경제가 파산한 왕국이었다. 백성을 대하는 태도에서 그 나라의 위정자나 조선의 위정자들 사이에 무슨 차이가 있었겠는가.

하지만 정부의 정보공개와 언론자유를 위한 기본 이념을 고안하고 입법에 앞장섰던 선각자들은 백성들에게 감추지 않고, 그들을 속이지 않는 정부의 존재가 나라 발전의 근본이며 나라의 부와 안정, 행복을 위한 전제 조건임을 깨달았다. 정부가 백성들의 행복을 위해 일하고 있는지를 감시하는 유일한 방법이 정보공개와 언론자유라고 생각했다. 이것 이외에, 최고의 권력을 가진 사람들을 책임 있게 만드는 다른 방법은 없다고 믿었다. 미국도 1789년 수정헌법 1조를 만들어 언론자유를 보장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스웨덴보다 200년 뒤진 1966년에야 정보공개법을 만들었다. 한국은 1996년에 그 법을 제정했다. 스웨덴과 핀란드의 선각자들이 얼마나 멀리 내다봤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핀란드 울루대학교의 유하 메니넨 교수는 가혹한 땅에서 가난하기만 했던 스웨덴과 핀란드가 세계에서 가장 덜 부패하고 민주주의 원칙에 대단히 헌신하는 지역이 된 것은 투명하고 열린 정부 때문이라고 말했다. 길고 긴 식민지 시대에서 벗어나자마자 또다시 100여 년간의 러시아 지배를 감당했을 정도로 온갖 고생을 했던 핀란드가 세계에서 가장 행복한 나라가 된 것은 투명하고 열린 정부의 원칙을 굳건하게 지켜왔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민주주의 국가의 어떤 정부에서도 ‘공개’와 ‘투명성’이 원칙이며 ‘비밀’과 ‘보안’은 예외가 되어야 한다. 정부가 하는 일을 제대로 알고 있는 깨어있는 국민들만이 나라를 바로 세울 수 있다.

박근혜 정부는 인수위원회 출범부터 비밀과 보안의 덫에 갇혀버렸다. 권력이 멀리 동떨어져 있고 그 핵심 세력이 비밀의 그림자에 가려져 있으면 국민들은 등을 돌리기 마련이다. 2006년 핀란드의 법무장관인 리나 루타넨은 “만약 정부가 국민들을 믿지 않는다면 어떻게 국민들이 정부를 믿을 것이라고 기대하겠는가”라고 정부 공개의 원칙을 강조했다. 국민들이 정부를 고마워하려면 정부가 먼저 국민에게 다가가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과 그의 각료, 참모들은 겸허하게 스웨덴과 핀란드의 교훈을 새겨들을 필요가 있다. 그리고 그들의 닫힌 의식과 문화를 바꿔야 할 것이다.

손태규 단국대 교수·언론학
#스웨덴이#핀란드#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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