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정용관]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을 맞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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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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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용관 정치부 차장
정용관 정치부 차장
“권력에는 매력이 있다. 도박과 돈에 대한 탐욕 못지않게, 권력은 사람의 피를 끓게 할 수 있다.”

해리 트루먼 전 미국 대통령의 말이다. 과거 미국 대통령의 어느 젊은 영부인은 남편이 선거에서 패배하자 백악관 하인에게 “이 집의 가구와 장식을 잘 보살펴 주었으면 해요. 우리가 돌아왔을 때 모든 것이 지금 이 상태였으면 하거든요”라고 했단다.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치명적 매력’ 그 자체다.

째깍째깍, 지금 이 순간 청와대 관저의 시계 초침은 빠르게 돌고 또 돈다. 최고 권좌에서 물러날 때의 복잡 미묘한 심리는 당사자 외엔 가늠하기 어렵다. 5년 임기는 순식간이다. 성공한 최고경영자(CEO) 출신 대통령이 이를 몰랐을 리 없다. 구체적인 목표를 정하고 오전 4시에 일어나 자정까지 쉬지 않고 일했다. 말 그대로 ‘얼리 버드’ 대통령이었다. 그 결과는? 서울대 송호근 교수는 이명박 정부를 ‘프로젝트 정부’라고 규정했다. 국민과의 공감보다는 사업에 몰두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생각을 존중하고 공존의 조건을 상호 모색하는 이른바 ‘소통 정의’를 간과했다는 지적이다. 그러고 보니 사업 자체의 평가를 떠나 지난 5년은 숱한 프로젝트의 연속이긴 했다. 4대강 사업,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와 핵안보정상회의 개최, 평창 겨울올림픽 유치, 여수 세계박람회 개최, 원전 수주, 녹색기후기금(GCF) 사무국 유치에다 아덴 만 구출 작전까지….

이명박 정부의 공과에 대한 평가는 아직 이르다. 공칠과삼(功七過三)이든, 그 반대이든 지금 시점에선 그리 중요치 않다. 분명한 건 정확히 11일 후면 우리는 또 한 명의 ‘전직’ 대통령을 갖게 된다는 사실이다. 레너드 버나도와 제니퍼 와이스 부부가 쓴 ‘퇴임 후로 본 미국 대통령의 역사’(시대의 창)라는 책을 읽다 서막에서 이런 글귀를 발견했다. ‘전직 대통령들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요? 공터로 끌고 나가 총살을 해야 한다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지만 제가 볼 때 전직 대통령들이 이미 겪은 고통에 비하면 그쯤은 약과입니다.’ 22, 24대 대통령을 지낸 그로버 클리블랜드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 내놓은 냉소적 논평이다. 전직 대통령을 어떻게 예우하고 관리할지는 44명의 대통령을 배출한 미국에서도 뜨거운 이슈 중 하나다.

전직 대통령으로의 성공적 전환은 사실 한국 정치의 오랜 숙제이다. 젊은층의 공감을 얻기 위한 몇 가지 아이디어가 떠오른다. 그중 하나가 전직 대통령 연금이다. 퇴임 후 이 대통령은 현직 때 받던 연봉의 70%가량을 연금으로 받는다. 연간 1억3500만 원가량이다. 서울시장 때는 물론이고 대통령 재임 중 월급을 한 푼도 집으로 가져가지 않았고 거액의 재산도 재단 기탁 형식으로 사회에 환원했듯이 퇴임 후 연금도 청년 일자리 창출 ‘프로젝트’에 내놓는 거다.

전직 대통령은 하기에 따라서는 새로운 ‘직업(?)’ 모델을 만들 수도 있다. 미국 대통령들처럼 기업에서 거액의 자금을 출연 받아 재단을 설립하거나 강연 등을 통해 돈을 벌라는 얘기가 아님은 물론이다.

어쩌면 이 대통령의 ‘프로젝트’ 능력은 퇴임 후 더 빛을 발할지도 모른다. ‘한 수’ 배우려는 외국 정상도 적지 않다고 한다. 그의 재임 중 실패 경험조차도 국가로서는 소중한 자산이다. 이 대통령은 “내가 해봐서 아는데…”라는 특유의 화법 때문에 독선적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퇴임 후엔 그 경험이 국내외적으로 긴히 쓰일 일이 적지 않을 것이다. 새 대통령이 전직 대통령을 활용할 마음이 어느 정도 있느냐가 관건이겠지만…. 떠나는 대통령의 뒷모습은 늘 쓸쓸했다. 2월 25일, 그날만은 모든 평가를 뒤로하고 전직 대통령이라는 새로운 길을 향해 떠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따뜻한 눈길을 보내면 어떨까.

정용관 정치부 차장 yongari@donga.com
#이명박#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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