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채정호]당신도 일중독자인가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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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정호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한국직무스트레스학회장
채정호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한국직무스트레스학회장
우리나라는 중독 사회다. 여기에는 한번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하는 화끈한 성품이 한몫을 한다. 알코올 마약 도박 인터넷 중독 등 4대 중독만 따져도 경제적 손실이 100조 원이 넘는다고 한다. 담배 쇼핑 섹스 스마트폰 등 종목을 가리지 않고 중독은 큰 문제로 여겨진다. 만일 내 가족이 이런 중독이라면 어떨까. 걱정이 보통이 아닐 것이고 어떻게 해서든 치료시키려고 할 것이다.

하지만 단 하나 예외가 있다. 바로 일중독이다. 일중독자 보고 바람직하다고 칭찬까지 한다. 다른 중독은 스스로 좀 자제해야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일중독에는 그런 브레이크가 듣지 않는다. 능력 있는 사람, 효율성이 뛰어난 사람으로 칭송하고 격려한다. 일을 좀 덜 하면 능력 없는 사람 취급을 한다. ‘저녁이 있는 삶’은 배부른 타령이다.

퇴근도 늦고 주말에도 일을 한다. 늘 바쁘고 시간을 낼 수 없으니 식구들에게는 소외된다. 결코 행복할 수 없다. 가정에서 행복할 수 없으니 일에 더 매달린다.

일하기 싫어하는 사람에게 “일을 즐겨라”라고 말하는 상사도 있다. 일을 즐긴다고 해서 꼭 좋은 것만은 아니다. ‘일만이 즐겁고 모든 것은 관심이 없다’ 정도 되면 생산성도 떨어진다. 많은 시간을 쓰지만 효율성도 떨어진다. 탈진할 수밖에 없다. 더 나아가면 일하다 죽는다. 과로사다. 내가 나를 위해서 일하는 것인데 내 생명보다 일이 중요해진 꼴이다.

이런 상황이 반복되는 이유는 우리나라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공부의 ‘가치’를 알고 공부를 한 것이 아니라 좋은 학교에 가야 하는 ‘목적’을 위해 사는 태도가 몸에 뱄기 때문이라고 본다. 대학을 가고, 취직을 하며, 승진을 하고, 성과를 내는 것은 목적이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목적이 나의 가치는 아닐 수 있다.

여러 가치가 있을 수 있지만 가장 우선하는 것이 자신의 생명과 관련된 것이다. ‘생명(生命)’은 말 그대로 ‘살아 있으라’라는 명령이다. 그 명령을 잘 지키는 것이 아주 중요한 가치다. 그런데 일에 치여서 죽을 수는 없다. 집을 사는 것은 목적이지만 행복한 가정을 이루는 것은 가치이다. 일 때문에 가정이 깨질 수는 없다.

그런데 일중독자들은 일을 통해서만 만족을 느끼고 일을 하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자기 자신은 없어진다. 일하면서 생기는 성취와 성공의 순간을 잊지 못해 마약을 하듯이 일에 빠진다. 일을 진정제로 쓰는 사람도 있다. 현실이 괴로우므로 다른 생각을 하고 싶지 않아서 일에 빠진다. 스스로 무능력하다고 생각하고 열등감이 심한 사람들이 대표적인 경우다. 일을 열심히 하는 모습을 남에게 보여 주는 것으로 자기 자신을 위안한다.

물론 일 자체가 주는 기쁨은 있다. 열정적으로 몰입하고 그 순간에 삼매경에 빠져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며 즐기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일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불안해하거나 안절부절못하지는 않는다. 칭찬 돈 성공 위안 같은 것을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삶에서 중요한 순간이므로 일한다. 승진을 하고 인정받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업무가 가치가 있고 세상을 좋게 만든다는 확신을 가지고 일에 열중한다. 다른 생각을 하기 싫어서 괴로움을 잊기 위해서 일하는 것이 아니라 일하는 순간이 의미 있고 몰입의 순간이 좋아서 일한다. 당신은 어느 쪽인가.

채정호 가톨릭대 서울성모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 한국직무스트레스학회장
#중독#알코올#마약#도박#인터넷#일중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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