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화진]자본시장법 개정 더 미룰 수 없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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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화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김화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해 18대 국회 임기 종료와 대통령 선거 등으로 미루고 미루어 온 자본시장법 개정은 올해 우리의 최우선 과제다.

자본시장법 개정을 주춤하게 한 것은 경제민주화 흐름과 맞지 않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였다. 그러나 이는 잘못된 직관에 의한 오류다. 대기업들에 은행 문턱은 상대적으로 낮다. 반면 소형 상장회사,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은 자본시장에 주로 의존해야 한다.

은행은 리스크 때문에 위험이 높은 사업을 지원하는 데 한계가 있고 검증된 대기업 위주로 사업을 할 수밖에 없다. 반면 투자은행업의 본질은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이 대기업으로 성장하는 과정을 지원하는 것이다. 지금 나와 있는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기업금융 수단을 좀 더 다양하게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비상장회사 주식거래도 활성화하고 금융투자회사에 기업신용공여도 허용한다. 중소기업 전용 거래소 개설도 가능해진다. 더불어 주주민주주의와 투자자 보호를 위한 법적 장치도 강화하고 있다. 자본시장법 개정은 경제민주화라는 총론과 상치하는 것이 아니라 경제민주화를 실천하는 필수 각론이다.

자본시장법 개정안은 대형 투자은행을 육성하기 위한 지원책도 담고 있다. 혹자는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의 주범이 대형 투자은행이었다면서 반대하는데 이 또한 인식의 오류에 속한다. 금융위기 원인이 투자은행이었다는 생각은 리먼브러더스 도산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자동차회사 GM과 보험회사 AIG는 리먼브러더스보다 더 큰 부실 덩어리였다. 금융위기의 더 큰 원인은 은행들의 과도한 위험 인수와 부실자산에 대한 투자였다.

할리우드 영화들은 탐욕스럽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하는 투자은행 사람들을 겨냥한다. 미국 투자은행의 지나친 성과연동 보수체계와 미국 기업 경영진의 기형적인 고액 연봉 문제는 우리 사회에는 이식되기가 불가능한데도 이상하게 걱정들을 한다. 우리가 그러고 있는 동안 글로벌 대형 투자은행들은 금융위기 이후 마련된 새로운 규제체제에 신속히 적응하면서 프라임브로커리지를 중심으로 사업구조를 재편하고 다시 성장하고 있다. ‘월스트리트를 점령하라’고 한 것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탐욕과 부패를 추방하라’고 했어야 맞다.

사람도 혈액 순환이 중단되면 건강한 사람도 즉시 생명을 잃는다. 기업에 흑자부도처럼 안타까운 것은 없다. 그래서 금융은 산업생산의 주역은 아니지만 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또 우리 병원에 혈액이 모자라면 남의 병원 도움이라도 받아야 하는 것이 기업의 속성이다. 즉, 경제 국제화는 자본시장에서 시작되고 이상징후도 자본시장에서 먼저 발견된다. 골드만삭스자산운용이 철수하는 것은 이상 징후다.

은행 중심의 유럽형 금융에 비해 자본시장 중심의 영미형 금융이 거시경제지표 개선에 체계적으로 더 도움이 된다는 것은 세계 학계에서 이미 검증한 바 있다. 자본시장 중심의 금융은 위험을 널리 분산시켜 사업 위험의 감수를 권장한다. 위험의 반대말은 개인 차원에서는 ‘안정’이지만 사회적 차원에서는 ‘기회’다.

우리 자본시장이 침몰해도 대기업들은 버틸 수 있을 것이다. 대기업들에는 은행이 있고, 글로벌 자본시장이 있다. 그러나 미래의 대기업들인 소형 상장회사와 중소기업은 생존할 수 없다. 다행히 새 정부와 정치권은 미래 성장동력을 중소기업에서 찾기로 한 것 같다. 그렇다면 자본시장법 개정을 더 미루어서는 안 된다.

김화진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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