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임혁백]대통령 당선인 앞에 주어진 역사적 책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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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2월 2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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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2012년 원단(元旦)에 동아일보는 올해를 ‘글로벌 권력 이동의 해’(global power shift)라고 규정했다. 전 세계적으로 50여 개국에서 선거가 있었고 중국과 북한 같은 독재국가들에서도 세습, 세대교체를 통해 권력의 이동이 있었다. 이러한 글로벌 권력이동의 대미를 한국 대선이 장식했다.

이번 대선은 민주화 이후 치러진 역대 대선 중 가장 치열한 접전을 벌인 선거라는 점에서 대통령 당선인의 기쁨은 그만큼 더 클 것이다. 그러나 기쁨이 큰 만큼 당선인에게 부과된 역사적 책무도 무겁다.

첫째, 당선인은 선거로 갈라진 국민을 다시 통합해야 한다. 대통령제 아래에서 대통령은 정당에 소속된 정파적인 정치인인 동시에 대외적으로 국가를 대표하고 대내적으로는 초당적으로 국민 통합에 힘써야 하는 국가 지도자이다.

이번 대선에서 한국의 진보와 보수는 모든 역량을 총집결해 혈전을 벌였고 세대 간의 표 대결도 전쟁을 방불케 하였다. 18대 대선을 앞두고 한국 사회는 극단적으로 양극화되어 세대, 계층, 지역, 이념 간 갈등이 극에 달해 있었다. 민주주의하에서 선거는 두 가지 기능을 한다. 하나는 대표를 선택하는 기능이고 다른 하나는 갈등을 평화적으로 해결하는 기능이다.

그런데 이번 대선 과정은 이러한 갈등을 해결하는 장이 되지 못했다. 당선인은 국민의 선택을 받아 대표가 되었지만 18대 대선은 분열된 국민을 통합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더 갈가리 찢어 놓았다. 따라서 당선인은 자신을 지지하지 않은 반대자들에게도 좋은 대통령이 되겠다는 약속을 하고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고 그들의 상처를 ‘힐링’해 주어야 한다.

선거로 갈라진 국민 다시 통합해야

둘째, 이번 선거가 미래전망적(prospective) 선거가 아닌 과거평가적(retrospective) 선거가 되어버림으로써 후보들이 미래의 대한민국을 이끌어 나갈 자신의 비전과 정책을 충분히 설명하고 거기에 대한 국민의 평가를 받을 기회를 갖지 못했다.

후보와 유권자들은 너무 과거에 몰입해 있었다. 과거 회고적 평가는 박정희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갔고 2007년 대선에서 심판한 노무현 정부를 다시 부관참시했다. 현 이명박 정부에 대한 비판이 여당 후보에 대한 평가보다 더 많았고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가 야당 후보에 대한 평가보다 더 많았다.

물론 유권자들은 과거평가적 투표를 통해 현 정권과 그를 지지하는 정당과 후보에게 책임을 물어야 한다. 그것이 민주적 책임성(accountability)을 작동시키는 핵심 기제이고, 많은 정치학자들이 평화적 정권교체가 민주주의가 공고화되었다는 기준이라고 이야기하는 까닭이다.

그러나 과거평가적 투표의 중요성을 인정한다 하더라도 이번 선거에서 후보들과 정당들은 국민에게 미래전망적 투표를 할 기회를 주는 데 너무 인색하였다. 이번 선거에서 후보들은 선거관리위원회가 주최한 세 차례의 법정토론 외에 후보들 간의 정책과 비전의 차이를 유권자들에게 설명하고 알려줄 수 있는 토론회를 갖지 못했다.

그래서 대한민국의 유권자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후보와 반대하는 후보 간의 정책적 차이를 제대로 알지도 못한 채 과거처럼 연고, 지역, 세대, 이념, 계층에 따라 투표할 수밖에 없었다. 당선인은 자신의 정책이 제대로 평가를 받아서 당선되었다고 자부하지 말고 대통령직 인수 과정에서라도 자신의 정책을 제대로 설명하고 그것이 어떻게 실현 가능한지 소상히 국민에게 밝혀야 할 것이다.

셋째, 당선인은 대한민국의 대외 국가전략에 관해 자세한 설명을 해야 할 것이다. 동북아의 모든 나라에서 권력이동이 일어난 글로벌 권력 이동의 해에 대외 국가전략에 관한 토론이 실종된 것은 참으로 이상한 일이다.

글로벌 권력이동의 해에 동북아에서는 전면적인 권력 변화가 있었다. 11월에 미국에선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재선되었고 바로 며칠 후에 중국에서 시진핑 체제가 공식적으로 출범하였다. 북한에서는 작년 이맘때 김정일의 급사로 권력을 세습한 김정은이 권력을 안정시키는 데 성공하고 있고 러시아에서는 블라디미르 푸틴이 다시 대통령직으로 귀환했다. 일본에서는 자민당이 압승하여 극우 정치인 아베 신조 총리가 복귀하였다.

대외국가전략도 자세히 설명을

이러한 동북아 안보 체스판의 근본적인 지각변동에도 불구하고 대선 과정에서 대외전략에 관한 토론은 북한 문제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나 북한 문제는 민족문제인 동시에 국제 문제이고 국제 문제를 풀지 않고서는 북한 문제를 풀어 나갈 수 없다. 당선인은 동북아에서 새롭게 등장한 권력자들이 공통적으로 강한 민족주의적 성향을 갖고 있고 이것이 동북아 안보 체스판의 변동을 추동하는 힘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지금 동북아 안보 체스판에서 한국의 위상은 곤궁하다. 북한과 중국의 순망치한의 관계는 G2 시대에 더욱 강화되고 있고 일본의 아베 정권이 극우정책으로 치달으면서 중국과의 마찰이 불가피한 상황에서 한국은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지 방황하고 있다. 당선인은 한반도 안에 갇혀 있는 우리의 대외전략을 동북아로 확대하는 거시적 안목을 가지고 대담한 국가전략을 수립해야 할 숙제를 대통령직 인수 과정에서 풀어야 한다.

임혁백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대통령#대선#박근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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