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용범]국산 맥주가 어때서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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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용범 시인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김용범 시인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우리나라에서 생산되는 맥주가 평양의 대동강맥주보다 맛없다는 외신 보도를 둘러싸고 이런저런 말이 많다. 좋은 사람들을 만나 술 한잔 기울이며 회포를 푸는 송년 시즌에 이 느닷없는 논란을 지켜보면서, 애주가의 한 사람으로서 여간 심기가 불편한 게 아니다. 내가 평소 즐겨 먹는 음식에 대해 외국인으로부터 이러쿵저러쿵 손가락질을 당하는 것 같아 은근히 부아까지 치민다.

맛의 기준은 대단히 사적(私的)인 것이다. ‘맛있는 된장찌개’라고 했을 때 그말 앞에는 ‘내 어머니가 끓여 주시던’이란 수식어가 생략되어 있다. 어찌 우리나라 애주가들의 어머니가 한 분일 수 있겠는가.

음식 맛은 어차피 각각의 취향과 기호가 기준이 될 수밖에 없다. 술 한잔에는 마시는 이의 개인적 감성과 추억, 기쁨과 슬픔이 고스란히 스며 있다. 여기에 함께 먹는 안주와 음식, 그날의 날씨와 분위기, 술을 마시는 상대의 호감이 겹쳐져서 교향악단의 연주처럼 하모니를 이루는 것이 우리네 술자리다.

필자는 마침 대동강맥주를 어렵지 않게 구해 마실 수 있는 중국 옌볜대 방문교수로 와 있다. 그러기에 요즘 맥주 맛 논란을 보면서 대동강맥주를 직접 마셔 보지 않을 수 없었다. 첫 모금부터 맛이 강하고 쓴 게, 영 내 취향이 아니었다. 영국의 에일식(제조과정 중 맥주 통 위쪽에서 효모가 발효되는 방식) 맥주에 익숙한 사람이면 모를까 내 입맛엔 순하고 상쾌한 라거(맥주 통 아래쪽에서 효모가 발효되는 방식)가 제격이란 걸 재확인했을 뿐이다.

40년 맥주 애호가로서 약간의 지식을 덧붙이자면, 다도(茶道)를 즐기는 이들이 차를 우릴 때 상투(上投·탕수를 먼저 붓고 그 위에 차를 넣는 것) 하투(下投·차를 먼저 넣고 탕수를 붓는 것)라 말하듯, 맥주 제조방식은 ‘하면 발효’(라거식), ‘상면 발효’(에일식)의 두 가지로 나뉜다. 맥주 맛이 두텁고 강하다느니 가볍고 깔끔하다느니 하는 차이는 이 제조방식의 차이에서 오는 것이다.

우리처럼 ‘맵고 짠’ 음식문화가 발달한 나라에서는 라거식 맥주가 대중적 인기를 끄는 게 당연해 보인다. 이런 문화적 차이를 간과한 채, 대놓고 ‘한국 맥주는 맛없다’라고 단정하는 것은 국산 맥주 애호가들을 문화적으로 깔아뭉개는 것밖에 안 된다. 그 근거 없는 문화적 우월감은 도대체 어디서 나오는가.

몇 해 전 해외 출장 때 현지 맥주가 입맛에 맞아 여러 캔을 비웠던 기억이 있다. 알고 보니 ‘메이드 인 코리아’였다. 그 나라에선 가장 많이 팔린다는 프리미엄 맥주였는데 전량을 한국에서 생산한다는 것이었다. 요즘엔 국산 맥주의 해외 수출도 많이 늘고 있다고 하는데 한국의 맥주 양조기술이나 품질력을 문제 삼는 것도 온당해 보이진 않는다.

백 번 양보한다 해도 하필이면 왜 대동강맥주인가.

가까운 동네 마트만 가도 전 세계 각국의 수입 맥주를 손쉽게 살 수 있는 나라에서 굳이 구해 마시기 힘든 북한산 맥주를 비교한 이유는 뭘까. 세계 최상의 브랜드들과 비교라도 했다면 자존심이라도 덜 상했을 터인데. 술친구들이 그리워지는 2012년 세밑. 입맛이 정말 씁쓸하다. 마치 대동강맥주의 낯선 맛처럼.

김용범 시인 한양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
#국산 맥주#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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