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백순근]‘자사고 폐지’ 안 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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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순근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백순근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개별 고등학교의 입학 경쟁률은 경제 상황이나 주변 여건 등 다양한 요인에 의해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한다. 개별 학교의 교육 프로그램 개선 노력이나 상급 학교 진학 성과 등에 의해서도 해마다 입학 경쟁률은 달라지기 마련이다. 대선후보들이나 교육감 후보들의 공약에 의해서 달라질 때도 있다. 자율형사립고(자사고) 역시 마찬가지다.

올해 자사고 입학 경쟁률은 1.35 대 1로 작년 1.34 대 1보다 약간 높아졌으며, 정시모집에서 미달된 학교가 16개로 작년과 같은 수준이다. 최근 어려운 경제 상황을 감안하면 선방했다고도 할 수 있다.

그러나 일부 자사고 미달 사태를 근거로 자사고 폐지 논의가 나오고 있다. 특히 일부 대선후보와 교육감 후보는 자사고를 단계적으로 폐지하겠다는 공약을 발표한 상태다. 하지만 미달 사태를 근거로 자사고 정책이 실패했다고 볼 수는 없다. 주변 여건이나 상황에 따라 정시모집에서 미달될 수도 있기 때문에 추가모집이라는 제도적 장치가 있고, 개별 학교의 상황과 여건에 따라 자사고 진입과 퇴출이 가능하도록 공식적인 절차가 체계적으로 마련돼 있는 것이다.

흔히 교육을 백년지대계라고 한다. 우리 미래가 교육에 달려 있다는 뜻이다. 교육 정책은 이처럼 중요하기 때문에 종합적인 진단과 체계적인 연구 결과에 근거해 신중하게 판단해야 한다.

자사고 정책은 학생의 학교 선택권 확대와 사립학교의 자율성 확대를 통해 글로벌 창의 인재 육성에 기여하자는 취지에서 체계적인 연구와 각계각층의 충분한 논의를 거쳐 나왔다. 고교평준화 정책의 기본 틀을 유지하면서도 고교 교육의 다양화 특성화 자율화를 추진하기 위해 고안한 방안이었다.

이 정책에 따라 2010년 20개 학교를 시작으로 현재 전국적으로 50개 자사고가 운영 중이다. 현재 많은 자사고가 개별 학교 건학이념과 여건에 따라 다양하고 특색 있는 교육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으며, 그동안 소극적이던 사학법인의 교육 투자를 증가시키는 등 고교 교육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또 학교 운영에 대한 자율성이 확대됨에 따라 학교법인, 교원, 학생, 학부모 등 모든 구성원이 혼연일체가 되어 학교 발전을 위해 진지하게 노력하고 있다.

그러므로 모든 자사고를 동일하다고 간주해 정책 자체의 폐지를 주장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여러 가지 면에서 잘하고 있는 학교는 더 잘할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하고, 잘하지 못하는 학교는 종합적인 진단을 통해 잘할 수 있도록 일정 기간 돕는 것이 맞다. 물론 그 후에도 개선 의지나 노력이 부족할 경우에는 퇴출시켜야 할 것이다.

자사고 정책을 포함해 모든 교육정책이 정치적인 힘에 의해 좌우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정치적인 힘과 무관하게 교육 본연의 목적에 충실할 수 있도록 창의적인 글로벌 인재를 육성하는 방안이 종합적으로 검토되고 신중히 결정돼야 한다. 적어도 일부 자사고의 미달 사태를 근거로 하여 자사고 정책이 중단되는 것은 막아야 한다. 이는 목욕물을 버리려다 어린아이까지 버리는 어리석음을 저지르는 것과 마찬가지다.

성급히 자사고 폐지를 외치는 대신 일부 자사고의 미달 사태의 원인이 무엇인지에 대한 체계적이고 종합적인 연구가 시급히 진행돼야 한다. 그 원인이 면밀히 분석된 이후 그에 따른 적절한 후속 조치가 이루어져야 한다. 아울러 그 후속 조치로 인해 현재 자사고에 다니는 학생들이나 지원한 학생들이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각별히 유의해야 할 것이다.

백순근 서울대 교육학과 교수
#자사고#개별 고등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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