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최공필]시장에서 안먹히는 하우스푸어 대책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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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공필 금융연구원 상임자문위원
최공필 금융연구원 상임자문위원
금융권이 빚을 내 집을 샀다가 원금 상환에 허덕이는 하우스푸어에 대해 이자를 유예해주고 대출은 연장해주는 대책을 내놓았다. 한국 경제를 흔들 뇌관으로 여겨지고 있는 가계부채 문제에 대해 모처럼 구체적이고 선제적인 대응이라는 측면에서 긍정적이지만 시장 반응은 냉담하다. 신청자가 많아야 수십 명 수준이라고 하니 말이다.

정치권 개입으로 채무자 방관

시장 반응이 냉담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우선 ‘선거철 대책’이라는 타이밍상의 근본적인 한계를 가진다. 하우스푸어라는 특정 계층을 겨냥한 지원이라는 식으로 잘못 해석되면서 출범할 때부터 난항을 거듭했다. 지금 시장에는 곧 새 정권이 들어서면 더 유리하고 파격적인 구제책이 나올 것이라는 기대가 팽배하다. 버티는 사람이 이긴다는 심리가 만연해 있다는 뜻이다. 조건이 변경될 가능성이 높은 프로그램에 선뜻 나설 참여자는 많지 않다.

또 은행별로 프로그램을 내놓다 보니 대상 선정, 의도나 조건이 모두 약간씩 미흡했다. 집 가진 사람들이 자신들의 유일한 재산이라 할 수 있는 집의 소유권을 넘기면서까지 적극적인 노력을 해야 하는 이유를 찾지 못하고 있다. 급한 쪽은 돈 빌린 사람이 아니라 돈을 꿔준 은행이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채 조정 대책이란 게 빚을 진 주체에게 좀더 큰 혜택이 돌아가야 하는데 채무자들은 자기들이 몰리는 게 아니라 오히려 은행들이 몰리다 보니 자발적으로 나서서 채무자들에게 인센티브를 주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는 시장에 채무자보다 은행이 더 힘들다는 신호를 준다.

작금의 분위기는 집값 대출에 따른 가계부채 문제를 보는 당국의 안이한 인식을 반영한다. 지금 하우스푸어에 따른 가계부채 문제는 채권 채무자 둘만의 문제도 아니요, 채무자 혼자 나서서 해결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집단적이고 사회적인 문제라 할 만큼 커졌다는 뜻이다. 부채문제라는 게 성실하게 제때 빚을 갚는 사람이 혜택을 가져가야 하는데 버티는 사람들이 혜택을 보게 생겼으니 금융의 기본원칙마저 훼손되고 있다.

이런 분위기에서 발표되는 모든 대책은 상황에 인질로 잡힌 것이나 다름없다. 더욱이 향후 전개될 글로벌 차원의 경기침체 상태에서 채권자와 채무자 간의 관계는 더욱 더 균형을 잃을 가능성이 높다.

결국 종합해보면 현 하우스푸어 대책에 대해 시장이 미온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채무자가 적극적으로 나설 만한 유인 구조가 잘못되어 있는 데다 정치권의 개입으로 인해 시장의 방관적 자세가 강화되었기 때문이다.

큰 그림하에서 문제 인식, 대응방식의 범위나 강도가 나와야 하고 추진 주체의 신뢰성이 담보되어야 하는데 이게 없으니 시장의 외면을 피하기 어렵다. 따라서 향후의 대응에 있어서는 시행 초기에 드러났던 문제점을 극복할 수 있는 획기적 차원의 준비가 필요하다.

“급한 쪽은 은행” 인식도 한몫

이제 가계부채 문제는 특정 부처 소관의 채무조정 이슈만으로 볼 수 없게 됐다. 체제적 문제로 확대된 이후의 책임소재와 분담구조의 실종은 기존 기구만을 활용한 대응을 어렵게 한다.

현재 하우스푸어 문제는 정부 주도로 일거에 해결하기에는 부채 규모가 너무 크다. 따라서 조만간 민관공동(private-public partnership)의 기금 형성을 통해 임대전환을 포함한 채무조정 프로그램의 본격적인 가동을 준비해야 한다. 주택거래 활성화를 촉진하고 필요한 만큼의 부채 감축이 자구적 차원에서 이루어질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이미 거시금융 건전성을 지키기 위한 ‘방화선(fireline)’이 크게 후퇴했음을 감안하여 면밀한 대응을 사전에 준비해야 한다. 그래야만 모두 최선을 다하고도 파국에 도달하는 어처구니없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 가계부채 문제는 정상적인 수준으로 대응하기엔 이미 늦었다.

최공필 금융연구원 상임자문위원
#하우스푸어#금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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