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창남]‘사전투표제’를 아십니까

  • Array
  • 입력 2012년 11월 29일 03시 00분


코멘트
김창남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정치학 전공
김창남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정치학 전공
대통령선거가 코앞인 시점에서 야권은 투표시간 연장을 주장하고 있다.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 측은 안철수 무소속 후보가 후보직을 사퇴하기 전 안 후보 측과 합의해 현재 오후 6시까지로 돼 있는 투표시간을 오후 9시까지 연장하기 위한 캠페인을 공동으로 전개하기로 했다.

문 후보는 “투표시간을 2∼3시간 연장하면 일 때문에 투표하지 못하는 수백만 명의 국민이 투표에 참여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정치 혁신”이라고 했다.

정상적인 대통령 후보라면 국가발전을 위한 비전을 제시하며 국민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다녀도 시간이 모자랄 것이다. 문 후보 말대로 투표시간 연장이 정말 가장 중요한 정치 혁신이라면 프랑스, 독일, 호주, 뉴질랜드, 핀란드 같은 정치 선진국은 왜 우리보다 짧은 투표시간을 유지하고 있을까. 미국은 광활한 영토에서 3억 명이 넘는 국민에게 주별로 9∼15시간의 투표시간을 주고 있으며 투표일이 공휴일도 아니다. 우리나라처럼 투표시간이 12시간인 캐나다, 아일랜드도 투표일을 공휴일로 하지 않기는 마찬가지다.

2011년 중앙선관위 조사에 의하면 비정규직 근로자 중 12.4%만이 투표시간 연장을 원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58.1%는 “가능한 투표소 어디서나 투표하는 것”이라고 했다. 투표를 위해 근무지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으로 생각되는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선거일의 투표시간 연장을 별로 원하지 않는다는 이 조사 결과는 수백만 근로자가 선거일의 투표시간이 짧아서 투표를 하지 못한다는 주장에 정면으로 배치된다.

사실 우리는 근로자의 투표권 보장이 그 어떤 다른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다. 근로기준법 제10조는 근로자가 근로시간 중에 선거권을 집행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을 청구하면 사용자가 거부하지 못하도록 하고 있다. 공직선거법 제6조도 다른 사람에게 고용된 사람이 투표하기 위해 필요한 시간이 보장되도록 하고 있으며, 이를 휴무나 휴업이 아닌 것으로 규정해 근로자의 투표권 행사를 보장하고 있다. 근로기준법 제110호 또한 근로자의 정당한 선거권 행사를 방해한 자를 벌금형으로 처벌하도록 규정하고 있다.

이 밖에도 우리나라는 투표소가 보통 투표자의 거주지로부터 도보로 5∼10분 거리에 있고, 투표소당 평균 투표 인원도 3000명 정도(2012년 4월 기준)로 크게 무리가 없다. 2012년 2월에는 ‘어디서나 투표할 수 있는 사전투표제’가 국회에서 만장일치로 통과돼 2013년부터는 선거일에 투표할 수 없는 유권자들이 부재자 신고를 하지 않고도 선거일 5일 전 이틀 동안 전국 읍면동사무소에서 투표할 수 있게 됐다. 이 제도는 세계적으로 유례를 찾기 힘든 참정권 신장 제도로 평가되고 있다. 놀랍게도 이 과정에서 민주통합당은 투표시간 연장에 관해 아무런 언급도 하지 않았다 한다.

사실 참정권이란 국민의 권리이자 의무이기도 하다. 한 나라의 국민으로서 투표하는 데 필요한 약간의 수고와 비용을 감당할 생각만 있다면 우리나라를 투표 여건이 나빠 투표할 수 없는 나라라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따라서 투표시간을 연장해야 근로자의 참정권이 보장되고, 또 그것이 가장 중요한 정치 혁신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합리적 근거를 결여한 정치공세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선을 코앞에 둔 시점에서 근로자의 투표권 보장과 정치 혁신을 이유로 투표시간 연장을 추진하는 것은 진짜 목적이 무엇인지 의심된다. 추호라도 어떤 정략적 의도를 가지고 선거일의 투표시간 연장을 추진한다면 국민이 결코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김창남 경희대 언론정보대학원 교수 정치학 전공
#사전투표제#대선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