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전순영]하나같이 비슷한 대선주자들의 말 말 말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1월 1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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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순영 시인
전순영 시인
덕필유린(德必有(린,인))이라는 말이 있다. 덕이 있으면 반드시 따르는 사람이 있다는 뜻이다. 덕이 있으면 공감을 불러일으킨다는 얘기이기도 하다. 그런데 요즘 대선주자의 말은 공감을 불러일으키기는커녕 식상함만 느끼게 한다. 왜 그럴까.

대선주자들이 하는 말이 하나같이 비슷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듣는 이에게 감동이 없다. 한편의 시도 새로움이 없을 때 독자들은 식상해 하는데, 하물며 한 나라를 이끌겠다는 대선주자들의 말이 거기서 거기, 비슷비슷한 말을 쏟아 내고 있으니 누가 감동을 받겠는가. 남과 다른 자기만의 새로운 비전을 내놓을 때 국민의 귀가 번쩍 뜨일 수 있다.

그런데 지금 세 명의 후보들은 하나같이 무상교육, 무상급식, 무상의료 등 비슷비슷한 공약만을 쏟아 내고 있다. 공약을 실천하려면 몇백조 원의 돈이 든다는데 어느 정도의 세수를 거둬들여 하겠다는 구체적인 안을 내놓지도 않고 하는 말들이기에 전혀 믿음이 안 간다. 돈이 하늘에서 뚝뚝 떨어지겠는가, 땅속에서 쑥쑥 솟아오르겠는가. 어떤 방법을 쓰든 국민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세금으로 메워야 할 돈임은 자명하다. 이렇게 믿음이 안 가는 후보들을 바라보면서 앞으로 이 나라가 어디로 갈 것인지 걱정스럽다.

물고기를 먹여 주는 것이 아니라 물고기 잡는 방법을 가르쳐 준다는 말이 있다. 성공한 사람들은 목표를 세우고, 스스로 죽을힘을 다해 부지런히 노력하고, 어떤 실패나 좌절을 겪어도 꿋꿋이 참고 견디면서 다시 일어서는 사람이다. 지도자가 해야 할 중요한 일은 당연히 국민에게 새로운 희망의 비전을 제시해 주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일이어야 한다. 하지만 그 전에, 참으로 나라를 아끼고 국민을 사랑하는 후보라면 돌팔매를 맞을지라도 진실을 말해야 한다.

지금 남발하는 공약들은 도저히 지킬 수가 없다고, 국내외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처해 있으니 허리띠를 졸라매겠다고, 나라살림부터 근검절약해서 어려운 문제들을 하나하나 풀어가도록 몸과 마음을 다 바치겠으니 국민도 함께 힘을 보태 달라고, 자신의 말에 믿음이 가면 밀어 주시고 믿음이 안 가면 표를 주지 말라고 사심 없이 말하는 후보는 없는 것일까?

‘장자’에 ‘임난불구(臨難不懼·어려움에 임해도 두려워하지 않는다)’라는 말이 나온다. 공자가 송나라를 방문했을 때 사람들이 공자를 비슷한 외모의 포악한 장수로 오인해 욕을 퍼붓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런데 공자는 묵묵히 거문고만 연주하고 있기에 제자가 묻자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물에서 만난 용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어부의 용기이고, 육지를 다니면서 호랑이를 피하지 않는 것은 사냥꾼의 용기다.” 그는 덧붙여 큰 두려움에 임해도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성인의 용기라고 했다.

참된 용기는 이렇듯 가슴 바닥에서 솟아오르는 것이지, 바람결에 들려오는 갖가지 소리를 듣고 적당히 섞어서 재탕 삼탕하는 것이 아니다. 지금 대선후보들에게 필요한 것은 참된 용기가 아닐까.

어떤 후보는 “스펙 초월 청년취업센터를 설립하겠다”라고 했고 어떤 후보는 “스펙 없는 꿈을 실현할 수 있는 사회를 만들겠다”라고 했고, 어떤 후보는 “스펙 사회는 정의롭지 못하다”라고 한다. 보여 주기 식의 스펙이란 면접 과정을 거치면서 다 걸러지게 할 것이라는 얘기다.

지금 대선주자들이 쏟아 내는 공약들이야말로 입사 때 액세서리처럼 주렁주렁 매달린 스펙 아닐까. 읽는 이의 가슴을 적셔 주는 것은 가슴으로 쓴 시다. 손끝으로 쓴 시는 미사여구로 잘 꾸며 놓아서 그럴듯하지만 다 읽고 나면 무엇을 읽었는지 기억에 남는 것이 없다. 지금 국민이 바라는 것은 핏줄을 타고 가슴으로 번져 오는 감동일 것이다. “나에게는 땀과 눈물과 뜨거운 가슴이 있을 뿐”이라며 우리 앞에 맨주먹으로 나서는 대선 주자는 없는 것일까.

전순영 시인
#대선#공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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