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정연욱]‘안철수 현상’ 對 ‘안철수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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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1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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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연욱 논설위원
정연욱 논설위원
“현재의 양당(兩黨) 구조가 국민의 다양한 요구를 수용할 수 있겠나. 박근혜, 문재인 누가 (대통령이) 되어도 구체제는 유지되는 것이다. 안철수의 (대선) 승리는 기존 체제의 몰락을 의미한다.”

안철수의 후원자로 알려진 법륜 스님은 지난주 한 비공개 토론회에서 ‘안철수 현상’의 의의를 이렇게 설명했다. 안철수를 통해 현재의 새누리당, 민주통합당 체제를 뛰어넘는 새로운 정치 지형을 만들어야 한다는 취지였다. 안철수 캠프는 스스로를 새 정치 세력으로, 기성 정치권을 기득권 세력으로 규정하면서 ‘기득권 대 새 정치’ 프레임을 작동시키고 있다. 민주당도 이 프레임의 덫에 걸려 있는 상태다.

작년 9월부터 불기 시작한 안철수 바람은 1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안철수는 박근혜 문재인과의 3자 대결에서 20%대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고, 박근혜와의 양자 대결에서도 강세를 보인다. 한순간 지나가는 바람이 아니라 분명한 실체가 있음을 확인해줬다. 안철수 현상이 안철수 정치를 불러낸 것이다.

안철수의 대선 출마 선언으로 안철수 현상은 천상(天上)에서 지상(地上)으로 내려왔다. 안철수 정치는 천상의 복음(福音)을 사람들이 사는 땅에 전파하려는 수단일 것이다. 그러나 현실의 토양은 너무 거칠다. 그런 탓인지 정치 현장에 뛰어든 안철수의 화법은 시종 애매모호하다.

안철수는 2일 제주에서 4·11 국회의원 총선의 민주당 패배를 놓고 “계파를 만들어 계파 이익에 집착하다가 총선을 그르친 분들의 책임”이라고 질타했다. 누가 봐도 당권을 쥔 문재인 이해찬 등 친노(親盧) 세력의 책임론을 거론했다고 볼 수 있다. 민주당의 반발이 전해지자 안철수는 “나는 인적쇄신에 대해 말한 적이 없다”고 빠져나갔다. 누가 봐도 전형적인 ‘치고 빠지는’ 기법이다. 안철수 캠프 인사들도 민감한 현안에 대해선 “국민이 판단할 것” “국민의 뜻을 따르겠다” 등 국민의 이름을 파는 주문(呪文)을 외며 피해간다.

안철수는 민감한 쟁점 공약일수록 딱 부러지게 말하지 않는다. 그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제주 강정마을 해군기지 건설에 대해 “해군기지는 국가 안보 차원에서 필요하다”고 말했다가 2일에는 “과연 강정이어야 했는지 따져봐야 한다. 대통령이 사과해야 한다”고 했다. 안철수의 발언만 보면 해군기지 건설을 계속하자는 것인지, 아니면 당장 중단하자는 것인지, 강정에서 다른 곳으로 옮기면 괜찮은 것인지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찬반 양쪽에서 다 욕먹지 않으려는 고육지책(苦肉之策)일 것이다.

1992년 2월 미국 텍사스의 대부호 로스 페로가 갑자기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 ‘페로 돌풍’이 불었다. 여태껏 공직(公職)이나 정치권과 거리를 두었던 기업가 페로는 정치 불신의 상징으로 급부상한 것이다. 한때 페로는 지지율이 39%로 조지 부시(31%), 빌 클린턴(25%)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할 정도였다. 그러나 그는 민주 공화 양당의 막강한 조직세를 이겨내지 못하고 무너져 내렸다. 페로는 대선에서 19% 득표에 그쳤다. 무소속 후보인 안철수는 단일화 경선을 거치기 때문에 페로와는 다르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안철수는 오늘 문재인과 단둘이 만나 야권후보 단일화 논의에 나선다고 한다. 이제부터 지루한 단일화 협상이 시작될 것이다. 두 후보의 단일화 협상은 이제 하나하나 국민의 냉정한 평가를 받을 것이다. 단일화 과정은 국민에게 희망을 줄 수도 있지만 피로감을 키울 수도 있다. 안철수 정치의 운명은 결국 조사 방식에 따라 수치가 오락가락하는 여론조사로 결정될 것이다. 대통령을 여론조사로 뽑아선 안 되듯이, 본선에 나갈 유력 대선후보도 여론조사로 정하면 국민의 뜻과 다른 결론이 나올 수도 있다. 안철수 현상과 달리 안철수 정치는 안갯속에 있다.

정연욱 논설위원 jyw11@donga.com
#대선#안철수#야권 단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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