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허문명]철책경비 군기(軍紀)가 무너진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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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10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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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오피니언팀장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며칠 전 군(軍) 관계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최근 떠들썩한 ‘노크 귀순’이 화제가 됐다. 현역 장성 1명과 군 고위간부를 지낸 퇴역 장성 4명, 필자 등 6명이 함께한 모임이었다. 대화는 “철책 경비가 왜 이렇게 풀어졌나”로 시작됐다.

“철책의 중요성이 예전보다 많이 약해졌다. 옛날엔 무장공비 침투를 막느라 삼엄했지만 이제는 귀순자 월북자 특수부대원만 간혹 넘어오는 정도지 무장공비는 없어졌다. 그게 수십 년 됐다. 북한 입장에서도 굳이 철책을 넘지 않아도 된다. 바다도 있고 제3국도 있고.”

“철책 근무는 초소 간 거리가 멀어 구조적으로 동료끼리 감시하지 않으면 안 된다. 또 병사들이 실탄 든 총을 들고 서 있는 곳이라 여차하면 쏠 수 있다. 밤에 외지인이 불쑥 모습을 드러냈다가 암구호를 모를 경우 사고가 날 수 있어 상급 부서라도 미리 통보하지 않으면 기습 순찰을 하기 힘든 여건이다.”

“1970, 80년대 그렇게 삼엄했던 때에도 초소에서 자는 병사들은 있었다. 주적(主敵)이 북한이 아니라 ‘상관’이라는 말은 그때도 있었다. 상관들이 라면 끓여 먹고 잠들면 따라 잤다.”

철책 근무 경험담들이 더 이어졌다.

“병사들의 긴장감이 많이 사라졌다. 내가 근무할 때에는 전기도 없고 CCTV도 없었지만 지금과는 비교가 안 됐다.”

“경계 근무만큼 지루하고 진 빠지는 게 없다. 사명감, 정신무장이 중요하다. ‘경계 근무의 과학화’를 한다며 CCTV만 늘리면 뭐 하나, (그걸) 보는 사람이 없으면 빛 좋은 개살구 아닌가.”

끝자리에서 조용히 듣고 있던 한 퇴역 장성이 입을 열었다. 톤이 약간 올라가 있었다.

“병사들 정신 상태가 해이해졌다고 하는데 그게 군 탓인가. 전교조에서 교육받은 아이들이 군대에 오고 주적을 미국이라 말하는 육사 생도도 있다. 역사 교육, 안보 교육이 문제다.”

“군만 그런가. 국정원도 대공(對共) 분야가 무너진 지 오래 아닌가. 요즘처럼 안보관이 흐트러진 시대에 병사들에게만 ‘잘해라’ ‘똑바로 해라’ 기합이나 명령만 갖고는 안 된다.”

현역 장성이 “결국 모병제의 문제”라고 하자 모두 관심을 기울였다.

“미국 군대는 동료가 동료를 감시한다. 근무를 태만히 할 경우 바로 급료가 깎이고 진급에 영향을 받는다. 우리 군이 미국처럼 모병제를 할 수는 없지만 적어도 직업군인에 대한 평가 방식만큼은 더 정밀하게 할 필요가 있다. 평가 시스템을 잘 만드는 게 미사일 한두 개 잘 만드는 것보다 중요하다.”

대화는 자연스럽게 ‘국방 개혁’ 쪽으로 흘렀다.

“군 복지도 포퓰리즘으로 흐르다 보니 병사들에게만 집중돼 병사들을 감독하는 중대장 이하 초급 간부 삶의 질이 형편없다. 숙소가 병사들 내무반보다 못하다.”

“이번 일로 철책 근무 병사 수를 늘리자고 하는데 소모적인 게 아닐까. ‘작지만 강한 군대’는 몇몇 귀순자 탈북자를 감시하는 게 아니라 만일의 경우 있을지 모르는 정규전 비정규전 같은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다.”

“정치군인이 너무 많다. 요즘 대선후보 캠프의 안보 공약 짜는 사람들 면면을 봐도 80%가 서로 아는 사람들이더라. 무엇보다 군 인사를 제대로 해야 한다. 안보와 관련한 인사만큼은 지역이나 정치적 변화에 좌지우지되어선 안 된다. 안보야말로 마지막 보루 아닌가.”

초반에 화기애애했던 분위기는 대화가 이어지면서 약간 침울해졌다. 그러나 군인들의 진정한 속내를 느낄 수 있었다.

허문명 오피니언팀장 angelhuh@donga.com
#군 관계자#노크 귀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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