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박형수]중장기 나라곳간 분석을 서둘러라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10월 1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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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형수 한국조세연구원 연구기획본부장
박형수 한국조세연구원 연구기획본부장
대선후보들의 복지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 논의가 한창이다. 새누리당 박근혜 캠프 내부에서는 부가가치세 인상을 검토한다는 이야기가 들리고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는 ‘부자 증세’를 공식화했다. 무소속 안철수 후보도 ‘보편적 증세’를 제안했다. 18대 대통령으로 누가 되든 다음 정부에서 증세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현재 세계 각국이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심각한 재정 악화로 골치를 앓고 있지만 우리는 다행히 2009년 하반기부터 2013∼2014년 재정수지 균형 달성을 목표로 한 재정건전화 계획을 수립, 이행하고 있다. 얼마 전에는 국가 재정이 양호하다는 평가를 받아 국가신용등급이 상향 조정되기도 했다.

그러나 작은 파도를 넘었을 뿐, 훨씬 더 큰 파도를 맞을 준비를 해야 한다. 대선후보들이 약속한 복지 확대는 결국 세금을 재원으로 하고 있다. 국제통화기금(IMF)은 향후 20년간 우리나라 연금과 의료비용 등 ‘고령화’ 관련 비용 지출이 주요국 가운데 가장 크게 늘어날 것으로 전망했다.

이미 저출산·고령화, 복지 확대 요구, 경제 위기, 남북통일이 재정 정책의 큰 환경 변화이자 국가 재정에 대한 심각한 도전과제로 부상해 있다. 인구 변화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빨라 2040년이면 주요 국가 중에서 가장 늙은 나라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지난해 통일부의 연구용역에 따르면 통일 비용이 통일 시기 및 복지 보장 수준에 따라 연평균 국내총생산(GDP) 대비 1.3∼6.6%에 달할 것으로 추정되었다. 이렇게 늘어나는 복지 지출이나 통일 비용에 필요한 소요 재원은 대부분 증세나 국채 발행을 통해 조달할 수밖에 없다.

지난달 20일 한국조세연구원이 개원 20주년을 맞아 발표한 연구 결과에 따르면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자연 증가만으로 우리나라 복지 지출 규모는 2009년 GDP의 9.6%에서 2050년 21.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수준인 19.2%를 넘어선다고 한다. 조세부담률을 현재 수준으로 유지하더라도 사회보험료 부담의 증가로 국민부담률이 25%에서 2050년 30%로 상승하고, 국가채무도 GDP의 33%에서 128%로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정치권의 4·11총선 공약을 추가하면 2050년 복지 지출 규모는 GDP의 22.6∼24.5%로 더 증가하는데 재원 조달 공약에 따라 국민부담률이 1∼3%포인트 더 올라가더라도 국가채무비율은 103∼115%까지 상승한다. 이는 재정위기를 겪고 있는 남유럽 국가들의 평균 국가채무비율 120%와 비슷한 수준이다. 따라서 차기 정부 집권 기간 중에 늘어나는 복지 지출은 재원 조달 공약으로 충당할 수 있겠지만 한번 늘어난 복지 지출은 차기 정부 이후에도 고령인구 증가에 따라 계속 늘어나 추가적인 재원 조달이 필요하게 된다.

정치권에서는 지속가능한 복지를 강조하고 있는데 차기 정부 5년 동안만 지속가능한 복지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더 나아가 일부 재정 위험이 현실화되고 2040년경 남북 통일이 된다면 2050년의 국민부담률은 현재보다 8∼10%포인트 올라가고 국가채무비율은 154∼165%까지 상승하는 최악의 상황에도 대비해야 한다.

국가 운용의 핵심인 재정 측면에서 국가의 미래를 준비하고 기획하는 역할을 하는 것은 정부에 주어진 가장 기본적인 임무이다. 하루빨리 한국조세연구원의 장기재정전망처럼 미래 재정 위험 요인별로 재정 부담을 객관적으로 진단하고 이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하는 중장기 재정 전망을 시스템화할 필요가 있다.

우리 정부는 지난해 말에야 정부 차원에서 장기재정전망협의회를 구성하고, 내년 상반기까지 장기재정전망 작업을 한다고 한다. 아무쪼록 기획재정부의 리더십과 각 부처 및 관련 기관들의 적극적인 협조로 작업이 잘 마무리되기를 기대한다. 미래 정책비전을 제시하기보다는 객관적인 중장기 재정 여건을 점검하고 정책 과제를 도출해야 할 시점이다.

박형수 한국조세연구원 연구기획본부장
#대선#복지#증세#예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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