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윤종빈]이정희, 대선 출마한 진짜 이유

  • 동아일보
  • 입력 2012년 9월 2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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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미래정치연구소장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미래정치연구소장
통합진보당이 중앙선관위로부터 수령한 19대 국회 첫 국고보조금은 7억여 원이다. 국회 13석을 보유한 공당(公黨)이기 때문에 선거공영제에 따라 혈세가 지급된다. 12월 대선에 나갈 후보를 추천하면 후보자 등록 마감일 후 2일 이내에 또다시 선거보조금 28억여 원을 받게 된다. 그래서 나는 이정희 전 공동대표가 정치적 자살행위인 대선 출마를 강행했다고 본다. 어쩌면 본인은 싫지만 이석기 의원과 당권파의 압력에 못 이겨 결단했을지도 모른다.

이 전 대표와 통진당은 대선 출마 이전에 국민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반성하는 게 먼저다. 지난 4·11총선 이전까지만 해도 국민들의 기대와 관심을 모았던 통진당은 결국 심상정, 노회찬, 강동원 의원이 탈당했고 의원 4명이 초유의 셀프 제명을 단행하면서 둘로 갈라섰다. 종북(從北)과 부정선거, 그리고 폭력 불감증이 원인이었다. 총선·대선용 기획정당의 한계를 드러낸 것이다. 감춰진 독선과 아집, 패권주의, 권력욕을 통째로 들켜버린 가짜 진보정치세력의 비참한 정치적 몰락이다.

진보정당은 이미 2008년에도 분열을 경험했었다. 2004년 전국의 모든 시도에서 10% 이상의 정당투표 지지, 원내 10석 확보로 진보정치의 신화를 만들었던 민주노동당은 2007년 대선의 처참한 패배로 진보신당과 분열되었다. 당시에도 당권파의 패권주의와 종북주의가 갈등의 원인이었다.

그러나 통진당은 4·11총선에서 창당 4개월 만에 화려하게 부활했다. 정당득표율 10.3%, 원내 13석 확보라는 성적으로 명실상부한 원내 제3당이 되었다. 그러나 총선 후 정확히 한 달 만인 5월 12일 민주화 이후 전대미문의 폭력사태를 유발한다. 비례대표 의원 경선 부정 의혹을 수습하기 위한 중앙위원회에서 의사진행을 방해해 단상을 점거하고 지도부를 폭행하는 등 대한민국 민주주의 역사를 퇴보시키는 사건을 저지른 것이다.

통진당은 또 비례대표 후보 경선 과정에서 심각한 부정행위를 저질렀다. 온라인에서의 중복 대리투표가 전체 투표자의 절반이 넘고, 8개 인터넷주소(IP)에서는 100회 이상 투표했다는 검찰 조사 결과가 나왔다. 이 전 대표의 참모 4명이 구속되고 10명이 불구속 기소됐다. 이 전 대표에 대해서는 검찰이 ‘심증은 가나 직접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기소하지는 못했지만 경선 부정과 폭력사태를 주도한 것은 이 전 대표가 속한 구당권파였다.

이들의 더 큰 문제는 잘못을 해도 잘못이라고 느끼지 못한다는 점이다. 명백한 부정선거의 물증이 다수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뻔뻔하게, 유죄라는 증거가 없는 한 무죄라는 ‘무죄추정의 원칙’을 내세웠다. 전형적인 기득권의 행태를 보였다. 조직의 내부 논리에 갇혀 국민들의 눈높이와 괴리된 것이다. 패권주의와 도덕적 우월주의에 함몰된 것이다. 통진당의 총체적 부실과 정치적 몰락은 진보정치세력의 도덕성에 치명타를 입혔다.

진보정치의 미래는 매우 암울하다.

그동안 우리 진보정당은 자발적으로 당비를 내는 10만여 명의 진성당원을 자랑하며 노동자 중심의 유럽식 대중정당을 지향했다. 새누리당과 민주통합당이 당원 확보에 실패하고 의원 중심의 미국식 원내정당화를 모색할 때, 진보정당은 대중정당화를 공고히 다졌다. 그러나 통진당의 진성당원들은 대거 이탈했다. 민주노총조차도 지지를 철회했다.

우리의 대중정당 실험이 실패하고 있다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다. 보수 세력은 진보집권 10년간 와신상담했고 2007년 재집권에 성공했다. 진보세력은 아직 10년간의 집권 추억에 취해 있는 듯하다. 진보정치의 생명은 도덕성이고, 변화와 개혁의 가치를 추구할 때 국민적 지지를 받을 수 있다. 부정선거, 패권주의, 폭력행위는 진보정치의 역사를 퇴행시키는 것이다.

윤종빈 명지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미래정치연구소장
#이정희#통합진보당#대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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