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황태훈]싸이의 ‘미국 침공’과 류현진의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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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2년 9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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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태훈 스포츠레저부 차장
황태훈 스포츠레저부 차장
2001년 3월, 막 데뷔한 작은 사내를 만났다. 첫인상은 ‘웃겼다’. 동그란 얼굴에 머리카락은 기름을 발라 뒤로 넘겼다. 서글서글한 눈매는 장난기가 넘쳤다. 가창력이 뛰어난 것도 아닌데 라이브를 고집했다. 불룩한 배를 내민 채 뒤뚱뒤뚱 춤을 췄다. “나 완전히 새 됐어”라고 노래를 마무리하며 날갯짓하는 포즈를 취했다. 생긴 대로 웃긴 친구였다.

요즘 장안의 화제인 싸이(35·본명 박재상)의 11년 전 모습이다. 그때도 지금처럼 그는 할 말은 거침없이 했다. 싸이라는 이름이 특이하다고 하자 ‘사이코(psycho)’의 줄임말이라고 했다. “나를 사이코라고 자처하면 내 멋대로 해도 될 것 같아 그렇게 지었다”는 거였다. 데뷔곡 ‘새’는 물질만능주의에 물든 세상을 자신을 차버린 여자친구에 빗대 가사로 만든 노래다. 실제로 그는 나이트클럽에 가는 것을 즐겼고 예쁜 여자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강남 세대’였다. 그렇지만 다른 구석도 있었다. 데뷔 앨범의 작사 작곡 연주 프로듀싱까지를 혼자 해냈다. 1998년 미국 버클리음대 프로페셔널 음악과에 입학해 내공을 쌓은 덕분이다.

그런 싸이가 올해 ‘강남스타일’로 글로벌 스타가 됐다.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는 동영상 사이트 ‘유튜브’에서 26일 현재 2억7000만 건이 넘는 조회수를 기록하며 미국 팝 시장을 강타했다. 한국 뮤지션으로는 처음으로 2주 만에 빌보드 핫100 차트 11위(29일자)에 올랐다. 1960년대 영국 록 그룹 ‘비틀스’의 ‘브리티시 인베이전(영국 팝 음악의 미국 시장 침공)’ 못지않은 파괴력이었다.

싸이가 대성공을 거둔 건 ‘가식을 털어낸 솔직함’에 있다. 거친 랩과 감각적인 멜로디, 흥겨운 춤 동작엔 그만의 개성이 담겨 있다. 그동안 팝 시장에서 보지 못했던 신선한 충격이었다. 이 정도면 ‘미국 침공’이라 부를 만했다. 그는 미국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한국어로 된 가요를 그대로 보여준 게 주효했다”고 했다. 가장 한국적인 것이 세계적인 모델이 될 수 있다는 얘기였다.

싸이가 미국에서 성공시대를 열었듯 스포츠에선 ‘괴물’ 투수 류현진(25)이 메이저리그 무대를 꿈꾸고 있다. 그는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에이스다. 2006년 한화에 입단해 6년 연속 10승 이상을 기록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2009년 제2회 월드베이스볼클래식 준우승을 이끈 주역이다. 올 시즌이 끝나면 7년을 채워 해외진출 자격을 얻는다. 구단의 동의를 얻어 ‘포스팅 시스템(비공개 입찰제도)’을 통해 미국 프로야구에 도전한다는 계획이다.

요즘 류현진이 등판하는 날이면 미국 프로야구 스카우트 10여 명이 경기장을 찾는다. 한 스카우트는 “류현진 정도의 실력이면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한다”고 평가했다. 시속 150km 강속구와 날카롭게 휘어지는 체인지업을 갖춰 상품성이 충분하다는 것이다.

류현진은 “몸값과는 상관없이 메이저리그에 가고 싶다”고 했다. 한화 구단의 허락이 있어야겠지만 그의 메이저리그 진출은 어렵지 않아 보인다. 관건은 ‘성적’이다. 미국 프로야구에 도전했던 수많은 선수가 마이너리그를 전전하거나 조용히 국내로 돌아왔다. 언어, 문화가 낯선 이국땅에서 외국인 선수가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류현진은 검증받은 투수지만 싸이의 ‘치열한 소신’을 배워야 한다. 싸이는 미국에서 한국어로 노래하고 말춤을 추며 케이팝(K-pop)을 알렸다. 류현진 역시 한국 야구를 대표한다는 자부심으로 이를 악물어야 메이저리그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미국에 갔다가 실패하면 한국으로 돌아오면 된다”는 안일한 생각은 버려야 한다.

황태훈 스포츠레저부 차장 beetlez@donga.com
#싸이#강남스타일#류현진#미국 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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